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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새해의 꿈

서혜란 국립중앙도서관장./오승현기자서혜란 국립중앙도서관장./오승현기자



지난해 여름, 독일 바이마르에서 며칠을 보냈다. 바이마르는 인구가 6만5,000명 정도에 지나지 않는 소도시지만 괴테와 실러, 리스트와 바흐가 활동했고 바이마르헌법과 바우하우스 예술 양식이 태어난 유서 깊고 아름다운 문화의 고장이며 특히 안나 아말리아 도서관이 있는 곳이다.

지난 1758년부터 바이마르공국을 통치했던 안나 아말리아 대공비는 괴테·실러 같은 당대의 지성을 초빙해서 바이마르공국을 유럽 최고의 문화강국으로 만들었다. 그가 바이마르 궁전의 ‘초록 성’에 만든 이 도서관은 건물 자체도 아름답지만 특히 루터가 번역한 독일어 성서 초판본, 괴테의 파우스트 완판본, 1만권에 달하는 셰익스피어 컬렉션 등 수많은 귀중본 장서로 유명하다. 이 도서관의 관장으로 오랫동안 봉직했던 괴테의 탄생 250주년이던 1999년부터 길 건너편 ‘붉은 성’을 연결하는 대규모 지하서고와 현대식 신관 공사가 시작됐다.


그런데 막 완공된 신관으로 장서 이전 작업을 시작하던 2004년 9월2일 밤, ‘초록 성’에서 노후 전선이 원인으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했다. 당시 우리나라 텔레비전에도 속보가 뜰 정도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5만권의 귀중서가 완전히 잿더미가 돼 사라졌고 불에 타거나 화재진압을 위해 뿌린 물 때문에 손상된 책이 6만2,000권에 이르렀다. 도서관 직원들은 물론 수많은 시민이 자발적으로 화재진압과 귀중서의 구출에 참여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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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1986년 4월2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공공도서관에는 방화에 의한 화재가 발생했다. 불은 7시간38분 동안 악마처럼 도서관을 휩쓸었다. 장서 40만권이 불길 속에 사라졌고 70만권이 연기나 물에 의해 심각하게 훼손됐다. 미국 역사상 공공도서관이 입은 최대 손실이었다. 작가 수전 올리언은 ‘도서관의 삶, 책들의 운명’에서 화재로 생긴 마음의 상처를 이겨내고 도서관과 책을 되살려내기 위해 분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두 도서관의 화재는 불도 무섭지만 화재진압을 위해 뿌리는 물이 더 무섭다는 사서들의 상식을 재확인시켜줬다. 다행히 국가문헌 보존 책임을 가진 국립중앙도서관의 보존서고는 방화벽, 24시간 모니터링시스템과 가스분사장치를 갖추고 있다. 유사시 차단 방화벽이 자동으로 내려오고 가스가 분사돼 서고 내 산소를 없애 화재가 번지는 것을 원천 봉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서관 길 건너편에 대형병원이 있다 보니 때때로 울리는 구급차 사이렌 소리에 깜짝깜짝 놀라는 건 직업병일 터이다.

경자년 벽두부터 왜 불 이야기를. 불나는 꿈은 길몽이라고 하지 않는가. 새해에는 우리 도서관이 더 발전하는 한 해가 되기를 꿈꿔본다. 연휴에도 출근해서 국립중앙도서관을 안전하게 지켜준 직원분들께 이 지면을 빌려 감사인사를 드린다.

최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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