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빙과류 등 계절사업엔 특별연장근로 못 쓴다

[근로기준법 개정안 시행]

업무량 폭증·설비 고장 등

'경영상 이유'는 승인 가능

주52시간 예외 허용 불구

객관적 기준 없어 혼란 우려

권기섭 고용노동부 근로감독정책단장이 지난 30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특별연장근로 인가요건 완화 관련 브리핑에서 기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세종=연합뉴스권기섭 고용노동부 근로감독정책단장이 지난 30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특별연장근로 인가요건 완화 관련 브리핑에서 기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세종=연합뉴스



급박하게 물량을 발주받아 업무량이 폭증했거나 설비가 고장 나는 등 돌발상황에 처해 주 52시간제를 일시적으로 지키기 어려운 기업들도 31일부터 특별연장근로를 쓸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설비의 정기 대수선이나 빙과류 등 계절성이 강한 사업처럼 통상적으로 예상 가능한 일에는 사용할 수 없다. 정부가 이 같은 내용의 주 52시간제 예외 허용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내놓았지만 여전히 구체적인 규정이 모호해 당분간 산업현장의 혼란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고용노동부는 이날부터 특별연장근로 인가요건을 확대한 근로기준법 시행규칙 개정안이 시행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주 52시간제가 중소기업으로 확대 적용됐지만 그 보완책으로 준비했던 탄력근로제 개편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함에 따라 이뤄진 조치다. 특별연장근로는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 사용자가 근로자의 동의하에 고용부 장관으로부터 사전·사후 인가를 받아 추가 연장근로를 할 수 있는 제도다. 개정안은 특별한 사정에 포함되는 요건을 기존 ‘재해·재난 및 이에 준하는 사고 수습’ 외에 몇 가지를 추가했다. 이 중 △시설·설비 고장 등 돌발상황 수습 △비통상적 업무량 폭증 △국가경쟁력 강화에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연구개발(R&D)이 경영상 이유에 든다.

노동부는 개정 시행규칙에 따라 특별연장근로 인가를 신청할 기업에 대한 가이드라인 격인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 설명자료’도 발간해 산업현장에 배포했다. 폭증한 업무를 최대 4주 안에 처리하지 않으면 사업을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없거나 금전적 손실이 클 때 특별연장근로를 쓸 수 있다. 이를테면 자동차 부품 불량에 따른 대규모 리콜로 정비 업무가 급증한 경우, 시스템통합(SI) 업종의 대규모 수정, 작업이 늦어지면 내구성에 치명적인 결함이 발생하는 건설공정 등이다. 국제적인 박람회와 체육·문화행사의 국내 유치를 위한 준비 업무, 명절 기간 비상운송, 장기간 합숙이 필요한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 업무 등도 같은 이유로 특별연장근로 대상이 될 수 있다. 사업주는 매출액에서 해당 업무가 차지하는 비중, 차후 계약에의 영향 여부 등 손실 가능성을 입증해야 한다.



반면 일부 케이스는 인가 대상에서 제외했다. 여름철 바빠지는 빙과 업종처럼 계절에 따라 주기적으로 업무가 늘어나는 경우, 석유화학 업종의 생산설비 정기수리처럼 통상 예견되는 기계 수리나 정기점검에는 쓸 수 없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탄력근로제 개편안의 입법 필요성을 훼손하지 않으려는 조치로 읽힌다. 일부에서는 특별연장근로 인가요건이 완화되면 굳이 탄력근로제가 필요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다. 또한 경영상의 이유로 특별연장근로를 사용할 때는 연 90일 범위 내에서 한번에 4주까지만 가능하다. 아울러 주 8시간 이내 운영, 11시간 연속휴식 등 건강보호조치도 해야 한다. 의무는 아니나 고용부는 보호조치 없이 인가를 요청한 사업주에 대해서는 반려할 계획이다. 권기섭 고용부 근로감독정책단장은 브리핑에서 “특별연장근로는 임시적이고 이례적 상황에 대응하는 제도”라며 “계절적이고 통상적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고용부의 다양한 사례 설명에도 모든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이 제시되지 않아 기업들이 혼란을 겪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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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근로기준법 시행규칙 개정안에 대한 반대의견서 제출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지난 20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근로기준법 시행규칙 개정안에 대한 반대의견서 제출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노사 양측의 불만도 거세다. 노동계는 특별연장근로 요건 완화가 노동시간 단축의 취지를 근본부터 훼손했다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민주노총은 성명에서 “불공정한 원·하청 관계하에 발주처의 일방적 주문에 따른 업무량 급증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다”라며 “근로자 대표 서면합의도 필요 없어 피해자가 속출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노총도 “노동자의 생명안전을 위해 연장근로를 주 12시간으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법률의 근간을 흔든 것”이라고 비판했다. 양대노총의 정책·법률 담당자들은 오는 2월3일 회의를 열어 근로기준법 시행규칙 취소소송과 집행정지 청구 등 공동대응 방안을 논의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역시 논평을 내 “기업에 일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이나 인가 사유가 너무 협소하고 건강보호조치를 사실상 강제해 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안긴다”고 주장했다. 경총은 “개정 시행규칙이 불명확한 용어로 특별연장근로 허용 여부에 대한 불확실성을 키울 것으로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세종=박준호기자 violator@sedaily.com

박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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