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6년은 K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매우 인상적인 시기였습니다. 바로 2016년 초 국내에서도 시청률이 38.8%라는 놀라운 성적을 낸 드라마 ‘태양의 후예’로 인한 ‘제2의 한류’ 붐이 일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중국에서는 아내들이 남편들에게 ‘왜 당신은 유시진 대위처럼 생기지 않았냐“라며 타박을 했다지요. ’태양의 후예‘가 인기를 끌자 한중 합작 드라마가 잇달아 제작됩니다. 중국 자본이 K엔터에 들어오던 시기와 맞물려 ’한류의 르네상스‘를 기대해 봐도 된다는 장밋빛 전망이 힘을 얻었던 때입니다. ’함부로 애틋하게‘ ’달의 연인 : 보보경심 려‘ ’사임당 : 빛의 일기‘ 등이 한중 동시 방송을 목표로 제작에 들어갔습니다. 한국에서 먼저 방송이 되고 그 다음에 중국에서 방송이 됐던 기존과는 완전히 달라진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중 관계가 급속하게 경색됩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의 한반도 배치에 따른 암묵적 한한령(限韓令·중국 내 한류 금지령)이 내려지게 된 겁니다. 중국 정부가 나서서 한국 드라마, 한류 스타 활동 금지를 선포하지는 않았지만, 갑자기 중국 내에서 방송되던 한국 배우가 출연한 드라마에서 그의 장면이 통편집되거나, 뿌연 화면처리가 돼서 나가거나, 촬영 중이던 배우들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말이죠. 이후 엑소의 난징 공연이 취소됐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정말 암묵적인 한한령이 내려졌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또 악동뮤지션 등의 소규모 공연 등은 허가를 해 한한령이 내려진 것이 아닌 듯 포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에스엠(041510), 와이지엔터테인먼트(122870), JYP 국내 빅3 엔터사들은 타격을 받기 시작합니다. 특히 와이지의 실적이 급락합니다. 2016년 매출액이 3,220억 원이었고, 이듬 해인 2017년에는 3,500억 원 다소 늘었지만, 한한령이 완전히 한류 비즈니스를 얼어 붙게 하고 본격적으로 실적에 반영되던 2018년에는 2,850억 원으로 급락합니다. 그리고 ‘버닝썬 사태’가 겹치면서 지난해 실적 추정치는 2,760억 원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JYP의 경우는 한한령에도 불구하고 걸그룹 트와이스가 일본에서 커다란 인기를 끌며 오히려 실적이 성장하는 특이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한한령이 K엔터에 제동을 건 건 실적 타격뿐만이 아닙니다. 당시에는 중국 자본이 급속하게 들어오던 시기였습니다. 많은 엔터사들이 중국 자본의 투자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배우 하정우 등이 소속됐던 연예기획사 판타지오(032800)의 경우는 당시 중국 투자 붐에 힘입어 2016년 중국 투자집단인 JC그룹의 한국지사 골드파이낸스코리아가 판타지오 지분 50.07%를 인수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최대주주 측의 나병준 한국 대표 해임 등으로 갈등이 빚어지면서 회사 운영 자체가 힘겨워진 사례로 꼽힙니다.
한한령이 풀린다 풀린다 기대감을 자극하는 소식들도 종종 들려왔었습니다. 지난해 5월 15일 가수 비가 중국 국가 행사에 참석했다는 소식 등이 알려진 겁니다. 제1회 아시아 문명 대화 대회의 축하 행사 일환으로 이날 중국중앙(CC)TV 등이 주최하는 아시아 문화 카니발에 한국 가수로는 비가 초대를 받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마저도 별다른 신호탄이 아니라는 것이 시간이 흐를 수록 증명됐습니다. 이후에는 또 아무런 소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드디어 올해 상반기 시진핑 국가주석이 방한을 한다는 소식과 함께 대규모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입국하면서 한류 비즈니스에도 다시 봄이 오는 듯 보였습니다. 한한령이 해제되는 듯한 분위기가 감지되기도 했지만 지난해 12월 중국 우한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라는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K엔테인먼트 산업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은 것입니다.
한한령이 완전히 해제가 됐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시진핑 주석의 방한 소식에 엔터사들은 중국 진출 준비에 분주했습니다. 대규모 콘서트는 중국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까닭에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판단 하에 소규모 팬미팅 등을 발 빠르게 준비했던 것이죠.
에프엔씨엔터(173940)의 경우 오는 3월 SF9의 칭다오 팬 사인회를, SM엔터테인먼트는 NCT드림의 마카오 콘서트를, JYP엔터테인먼트는 갓세븐 마카오 공연을 계획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커다란 인기를 끌고 있는 한 한류 스타는 최근 드라마로 컴백하면서 중국 활동 계획을 세웠었지만 이젠 불투명해진 상황인 것입니다. 드라마와 영화 제작사들도 그동안 공식적인 수출 길이 막혀 중국에서 불법 다운로드가 활개를 쳐 이를 타개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던 것이죠.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한령 해제 조짐에 따라 드라마 수출 타진을 비롯해 공연 기획에 탄력이 붙은 상황이었다”며 “그런데 현재로서는 이 모든 것을 잠정 중단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그는 이어 “현지에 있는 직원들의 안전부터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라 녹록지 않다”고도 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에 주식 시장도 빠르게 반응했습니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스튜디오드래곤 등 드라마 제작사들을 한한령 해제의 수혜주로 꼽았으며, ‘버닝썬 사태’ 등 악재로 곤두박질쳤던 와이지엔터테인먼트도 지디의 제대와 함께 빅뱅의 컴백을 알리며 기지개를 펴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상황이 심각해지자 반전으로 돌아섰습니다. 와이지엔터테인먼트의 경우 지난해 연말 2만 6,000원가량이던 주가가 한한령 해제 분위기에 3만 5,800원 가량으로 치솟다 3만 1,600원으로 하락했습니다. 에스엠 역시 지난해 연말 오름세를 보이며 3만 8,400원까지 올랐던 주가가 며칠 새 3만 2,850원으로 떨어졌고, 에프엔씨엔터도 9,000원까지 올랐던 주가가 현재 7,660원으로 하락했습니다.
올해 높여 잡았던 실적 예상치에도 적신호가 켜졌습니다. 주력 아티스트인 빅배이 컴백을 하는 데다 한한령까지 해제되는 분위기 속에 증권사들은 와이지가 올해에는 매출액이 3,360억 원으로 전년 대비 21.6% 증가하고, 영업이익 역시 8.2%가량 증가한 280억 원이 될 것으로 전망했었습니다. 에스엠도 2019년 매출액 6,650억 원(추정액)에서 6,980억 원으로 높여 잡았었습니다.
그러나 주력 아티스트의 컴백과 한한령 해제 분위기가 반전되면서 다시 한류 비즈니스에 적신호가 켜진 것입니다. 특히 이번 우한 폐렴은 전 세계적으로 번지고 있어 상황을 낙관하기 어렵습니다. 중국인들이 과거와 달리 해외 여행을 비롯한 이동이 많고 그 수가 다른 나라에 비해 압도적인 점 등이 사태를 더욱 우려하게 하는 이유입니다. 특히 한한령의 해제로 중국 진출이 원활해지고, 중국인 관광객들의 한류 콘텐츠 소비가 점차 증가해 시진핑 상반기 방한 결과에 따라서는 더욱 긍정적인 환경이 마련될 것으로 예상했던 것입니다.
지난해에는 한한령에도 불구하고, 일본인을 비롯해 중국인 관광객들이 뮤지컬 ‘엑스칼리버’ 등을 관람하는 사례가 늘어났습니다. 이 때문에 아이돌 출신 배우들이 출연하는 ‘드라큘라’ ‘웃는 남자’ 등 뮤지컬은 한한령 해제에 따른 관객 유입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에 따라 이 이제 막 다시 활기를 찾던 한류 비즈니스에 다시 찬바람이 불어온 것입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다른 산업이 모두 마찬가지겠지만 한한령 해제로 수출길 뚫리나 했더니 생각지도 못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라는 변수로 인해 내수까지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SM은 당장 다음달 1일 싱가포르에서 열릴 예정이던 소녀시대 태연의 공연을 연기했다. 다음달 7~8일과 15일에 각각 마카오와 싱가포르에서 열릴 예정이던 NCT드림의 공연도 줄줄이 잠정 연기됐습니다. 회사 관계자는 “중국 현지 절차가 복잡하지만 아티스트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했다”고 설명했습니다. FNC는 SF9의 공연까지 아직 행사 기간이 남아 있어 당장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지만, 사태 추이를 지켜 보며 향후 진행 방향에 대해 논의하고 있고 전했고, JYP도 “2월 초가 지나봐야 중국 일정에 대한 윤곽이 잡힐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배우 김수현은 대규모 국내 팬미팅을 취소했고, 걸그룹 모모랜드는 오는 3월 19일과 21일 ‘도쿄 신키바 스튜디오 코스트’와 ‘오사카 IMP홀’에서 각각 개최할 예정이던 일본 팬미팅을 연기하기로 결정했으며, 오는 12일 정규 1집 ‘유니버스 : 더 블랙홀’을 발매하는 보이그룹 펜타곤도 발매 당일 계획했던 팬 쇼케이스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우려로 취소했습니다. 특히 어린 학생 팬들이 많기 때문에 이러한 결정을 내렸다고 합니다.
한한령 초기 당시 중국이 가장 커다란 시장인 까닭에 중국 의존도가 높았기 때문에 타격은 더욱 컸습니다. 이 때문에 외교 리스크가 늘 존재하는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분산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습니다. 특히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베트남을 비롯해 ‘인구(2억7,000만 명) 대국’ 인도네시아 등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CJ ENM(035760)은 영화 ‘베트남 판 수상한 그녀’ 등을 현지에서 리메이크하는 등 나름 중국 대안 시장 공략을 시도했습니다. 롯데컬처웍스도 최근 영화 ‘베트남판 완벽한 타인’ 현지 리메이크 소식을 알리며 시장 다각화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마마무의 소속사인 RBW 역시 중국 재개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중국 시장이 막힌 동안 꾸준히 규모를 확대했던 베트남 현지 방송 콘텐츠 제작 등에 보다 주력한다는 계획입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번 우한 폐렴이 어느 정도까지 악화될지는 모르겠지만, 중국 대안 시장에 대한 모색은 꾸준히 이뤄져야 한다”며 “물론 중국은 가장 큰 시장이기는 하지만 늘 리스크가 존재한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전했습니다. /연승·한민구기자 yeonvic@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