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크리스마스 섬




지난 2015년 11월9일. 호주의 영토로 돼 있는 인도양의 한 작은 섬에서 폭동이 일어난다. 섬에 설치된 난민수용소에 갇혀 있던 쿠르드계의 한 이란 난민 청년이 탈출을 감행했다가 바닷가에서 숨진 채 발견되자 수용자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이들은 호주 정부의 강경한 난민 정책과 수용소 내 부적절한 처우에 항의하며 불을 지르고 건물을 파괴했다. 난민들의 무덤으로 불리는 이 수용소가 위치한 곳은 역설적이게도 아름다운 이름의 크리스마스 섬이다.


1643년 12월25일 발견돼 크리스마스 섬으로 이름 붙여진 이 섬은 호주 본토에서 2,600㎞나 떨어져 있으며 거리로 따지면 자바 섬 남쪽 360㎞ 지점에 위치해 인도네시아에 더 가깝다. 울릉도 면적의 두 배가 채 안 되는 135㎢ 크기의 작은 섬으로 2,000여명의 인구가 살고 있는데 70%가 중국계이고 나머지는 유럽과 말레이계다. 아름다운 자연으로 스쿠버 다이빙과 스노클링 같은 해양 스포츠를 즐길 수 있고 낚시 애호가들에게 명소로 알려져 있다. 크리스마스 섬은 1년에 한 번씩 섬 전체가 붉은색 물결을 이룬다. 우기에 접어드는 매년 11월 수억마리의 홍게가 산란을 위해 바다로 대이동을 하는데 붉은 양탄자가 움직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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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매력적인 곳이지만 2001년 이 섬은 비극의 아이콘이 되고 만다. 호주 정부가 본토에서 멀리 떨어졌다는 이유로 이 섬에 난민수용소를 세우기로 한 것이다. 계획 당시에는 1,200명을 수용 가능하도록 세웠지만 이민자와 난민이 늘면서 증축을 거듭해 지금은 2,700명에 달한다. 호주 정부가 난민에 워낙 호의적이지 않은 탓에 인권 수준이 열악해 ‘호주판 관타나모 수용소’라고까지 일컬어진다.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 가담자나 불법 체류자들을 가두면서 인종차별주의와 이슬람 혐오증의 복합품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호주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창궐하고 있는 중국 우한에서 철수한 자국민들을 크리스마스 섬에 최대 2주 동안 격리한다.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본토에 돌아가지 못하고 머나먼 섬에 갇힌 이들이 하루빨리 전염병의 굴레에서 벗어나 삶의 터전으로 복귀하길 바란다. /김영기 논설위원

김영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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