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신종 코로나)확진자가 잇따라 발생하는 가운데 방역 당국이 5번 환자(남·33세)가 방문한 사실이 확인돼 이틀 넘게 폐쇄된 CGV 성신여대 점을 “발병전 방문지였다”는 이유로 접촉자 관리명단에서 제외하는 등 관리 기준을 지나치게 허술하게 잡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미 일상접촉자 중에서 확진자가 발생(6번 환자) 만큼 접촉자 기준을 확대해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5번 환자의 접촉자는 33명”이라며 “(5번 환자가 방문한 것으로 알려진) CGV 성신여대점은 발병 전에 방문했던 만큼 이동경로에 포함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5번 환자가 앉았던 좌석 역시 “증상 이전 행적은 공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지난달 24일 입국한 5번 환자는 역학조사관과의 인터뷰에서 지난달 26일부터 증상이 발현됐다고 설명했으며 영화관은 하루 전날인 지난달 25일 방문했다.
전문가들은 질병관리본부가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밀폐된 공간에서 2시간 가량 음식을 먹으며 관람하는 영화관은 감염병 전파가 쉽게 이뤄지는 장소인데다 기억에 의존하는 발병일을 근거로 불과 하루 전날 방문한 영화관을 관리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지나치게 안일한 조치라는 의미다. 이상엽 고려대 호흡기내과 교수는 “영화관에서 2시간 함께 있었으면 충분히 바이러스가 전파될 수 있다”며 “잠복기 감염 사례도 발견되고 있는 만큼 발병 하루 전날 방문한 곳은 절대 안전한 곳이 아니다”고 밝혔다.
이미 확진자가 방문한 것으로 알려진 곳들인데 질병관리본부가 발표하는 동선에서 빠진 경우도 있다. 서울 중구 신라면세점 서울점은 12번 환자가 지난달 20일과 27일 방문한 것으로 확인되며 2일부터 임시 휴업하기로 발표했지만 같은 날 발표된 질병관리본부의 12번 환자 동선에는 빠졌다. 정 본부장은 “밀접접촉자가 확인된 곳을 중심으로 밝히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발병 이후 동선과 접촉자만 관리하는 대처방법이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신종 코로나는 잠복기 감염이 가능한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추정 발병일에서 최소 2~3일 전 방문했던 장소와 접촉한 사람은 관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된다. 실제로 3차 감염자인 10번과 11번 환자는 기존 확진자였던 6번 환자의 병세가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전염됐다. 이 교수 역시 “발병일 역시 역학조사관의 인터뷰와 본인의 기억에 의존하는 만큼 정확하지 않다”며 “적어도 앞뒤 2~3일 정도의 간격을 두고 접촉자를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접촉자 기준 자체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인천국제공항에서 바로 격리된 첫번째 환자의 접촉자는 45명인 반면, 발병 이후 최소 사흘 이상 지하철을 이용하며 떡볶이집, 슈퍼마켓, 미용시설, 역술집을 방문한 다섯번째 환자의 접촉자는 33명에 불과하다. 정 본부장은 “첫번째 환자의 경우 비행기를 함께 탔던 사람을 접촉자 명단에 포함했다”고 설명했지만,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의견이 많다.
일상접촉자와 밀접접촉자를 나누는 기준이 없었던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정 본부장은 “위험도를 분류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밀접접촉자와 일상접촉자를 나누는 기계적인 기준을 갖고 있지는 않다”며 “역학조사관 등의 의견을 종합해 밀접접촉자와 일상접촉자를 나누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6번 환자의 경우 일상접촉자로 알려졌던 사람이 밀접접촉자로 바뀌는 과정에서 관할 보건소에 정보전달이 되지 않는 등 관리상의 문제를 노출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정부는 접촉자 구분을 없애 무조건 격리조치 하는 것으로 방침을 바꿨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저녁 “일상접촉자와 밀접접촉자 구분을 없애고 접촉자 모두 14일간 자가격리를 실시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 교수는 “중국 후베이성 체류 외국인에 대한 입국금지 조치가 병의 외부 유입을 막는다면, 다음에는 국내에서 전파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내부 전파를 막는 가장 첫 번째 단계가 접촉자 관리”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이어 “질병관리본부가 한 발씩 늦게 접촉자관리에 나서는 것 같다”며 “선도적으로 접촉자 관리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세종=우영탁기자 ta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