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헌혈자 하루 1명뿐...메르스 때도 이러지 않았다"

■발길 끊긴 헌혈의집 가보니

평소 60명 이상 몰리던

건국대·광화문센터 썰렁

"피 모자란다" 소식 듣고

선의의 헌혈 이어지지만

감소폭 회복 역부족 우려

5일 서울 종로구 헌혈의집 광화문센터 입구 앞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관련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허진기자5일 서울 종로구 헌혈의집 광화문센터 입구 앞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관련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허진기자



“혈액이 부족해서 직원들 지인까지 동원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혈의집 광화문센터에서 만난 전현도 간호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대한 우려 때문에 방문자 수가 대폭 감소했다”며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이곳 광화문센터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헌혈을 하려는 직장인들이 꾸준히 찾지만 이날은 한산했다. 평소에는 하루 60명 정도가 헌혈하러 방문하지만 지난 4일은 단 1명에 그쳤다. 전 간호사는 “이곳에서 오래 일했지만 혈액 기부자가 1명인 적은 어제가 처음”이라며 “메르스 사태 때도 이렇지는 않았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날 센터에서 만난 한 직장인 여성은 신종 코로나로 인해 병원에서도 혈액 수급이 어렵다는 소식에 아버지를 위한 지정헌혈을 하러 방문했다고 밝혔다. 전 간호사는 “지정헌혈자가 많은 것은 그만큼 헌혈자가 줄어 혈액 수급이 원활하지 못한 상황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덧붙였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에 따르면 4일 기준 혈액 보유량은 3~4일 치에 불과하다. 이런 추세라면 오는 13일쯤이면 혈액 보유량이 3일 이하로 떨어져 ‘혈액위기상황’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신종 코로나 첫 확진자가 나온 지난달 20일부터 헌혈 참여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이달 2일까지 헌혈 의사를 나타냈던 145개 단체가 헌혈을 취소하는 등 기부행렬도 얼어붙은 상황이다. 적십자사가 전날 긴급호소문을 내 “과거 메르스와 사스 때도 국민들의 인도주의 정신을 바탕으로 위기를 극복했다”며 “긴급하게 수혈이 필요한 환자들을 위해 헌혈에 적극 동참해주실 것을 다시 한번 호소한다”고 당부한 것도 상황이 급박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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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서울 광진구 헌혈의집 건국대센터는 평소보다 방문객이 적어 대부분의 침상이 비어 있다. /허진기자5일 서울 광진구 헌혈의집 건국대센터는 평소보다 방문객이 적어 대부분의 침상이 비어 있다. /허진기자


평소 60여명 이상의 헌혈자가 찾는 서울 광진구 헌혈의집 건국대센터도 광화문센터와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4일 혈액기부자가 평소의 절반이 안 되는 27명에 그쳤다. 겨울은 혈액 비성수기인데다 인근에 위치한 건국대가 방학을 한 탓도 있지만 신종 코로나 공포가 확산하면서 혈액기부자들의 발길이 크게 줄었다. 평소 같으면 A4용지 2장을 채우는 헌혈 예약자도 이날은 6명에 그쳤다.

혈액 기부가 줄자 적십자사가 긴급 대책 마련에 나선 상황이다. 문진표를 작성하는 공간, 출입구, 상담 창구 등 시설 곳곳에 손 세정제를 추가 비치했다. 아침저녁으로 하루 두 번 실시하던 베드(침상) 소독도 방문자가 올 때마다 수시로 하는 등 감염 우려에 대비해 각종 기구 소독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또 4일 저녁부터 적십자사는 혈액 기부를 유도하기 위해 전혈(혈액의 모든 성분을 헌혈하는 행위 또는 그 혈액) 기부자에 한해 기념품으로 제공했던 영화상품권을 기존 한 장에서 두 장으로 늘리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다.

5일 서울 종로구 헌혈의집 광화문센터 내 문진 창구에 손 세정제가 비치돼 있다. /허진기자5일 서울 종로구 헌혈의집 광화문센터 내 문진 창구에 손 세정제가 비치돼 있다. /허진기자


헌혈의집에서는 최근 혈액 수급이 원활하지 않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러 찾았다는 시민도 만날 수 있었다. 건국대센터에서 만난 정모(26)씨는 “1년에 서너 번 정도 헌혈하는데 최근 혈액이 부족하다는 뉴스를 보고 일부러 예정보다 빨리 방문했다”고 말했다. 또 평소 두 달에 한 번씩 헌혈한다는 박모(22)씨는 “헌혈의집은 혈액을 관리하는 곳인 만큼 더 방역이 잘돼 있을 거라 보고 아무 걱정 없이 방문했다”며 “혈액기부자가 다시 늘어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와 소속 의원, 4·15총선 영입 인재들은 이날 국회 의원회관 앞 헌혈버스를 찾아 단체 헌혈을 했다. 혈액을 기부한 이인영 원내대표는 “가뜩이나 겨울철에 헌혈이 어려운데 신종 코로나로 인해 더더욱 혈액 수급이 어려운 엎친 데 덮친 격 같은 현실이 됐다”며 “막연한 불안감과 공포가 우리 사회를 움츠러들게 하고 있는데 불안과 공포에 우리가 움츠려선 안 된다”며 헌혈 동참을 촉구했다.


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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