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대로였다. 공화당이 주도하는 미국 상원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2건을 모두 부결시켰다. 지난해 9월 하원이 탄핵조사를 공식화한 후 4개월여 만에 탄핵의 굴레에서 벗어난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11월 대통령선거를 위한 행보에 탄력이 붙게 됐다.
5일(현지시간) CNN에 따르면 이날 오후4시7분부터 약 28분간 이뤄진 탄핵투표에서 권한남용은 찬성 48표와 반대 52표, 의회방해는 찬성 47표와 반대 53표로 각각 무죄가 선고됐다. 탄핵안이 인용되려면 상원(총 100석) 3분의2 이상의 찬성이 필요했다. 공화당 상원의원이 53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당론대로 투표가 이뤄진 셈이다.
유일한 반란표는 트럼프 대통령 저격수인 밋 롬니 의원(유타주)이었다. 그는 자신이 속한 당의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 유일한 상원의원이 됐다. 하지만 그도 권한남용에만 찬성표를 던졌을 뿐 의회방해 건에는 반대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일부 공화당 의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압력을 넣었다는 사실을 인정했지만 탄핵까지 당해야 할 사안은 아니라고 봤다”며 “정당 노선에 따라 투표가 이뤄져 대통령 탄핵에 필요한 3분의2에 한참 못 미쳤다”고 분석했다.
민주당은 반발했다.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의 의회 출석을 포함해 의회 차원의 조사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다. 전날 트럼프 대통령의 의회 국정연설문을 찢은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도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진실을 조각냈기 때문에 그의 연설을 찢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 측은 탄핵 국면에서의 완벽한 승리를 주장했다. 스테퍼니 그리셤 백악관 대변인은 “민주당이 꾸며낸 엉터리 탄핵 시도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완전한 정당성 부여와 면죄부로 끝났다”고 강조했다. 표결 결과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에 “탄핵 사기에 대한 우리의 승리를 논의하기 위해 내일(6일) 정오 백악관에서 대국민성명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신을 탄핵의 피해자로 묘사하며 지지자들의 결집을 촉구하겠다는 의지가 뚜렷하다.
실제 탄핵안 최종 부결로 족쇄를 풀게 된 트럼프 대통령은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 수 있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일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예비선거) 하루 전인 10일 오후7시 유세에 나선다. 미 대선 경선 방식은 코커스(당원대회)와 프라이머리로 나뉘는데 정식 당원만 참석하는 코커스와 달리 프라이머리는 당원과 함께 당원이 아닌 일반 유권자도 참여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대중적인 지지도가 반영될 수 있다.
공화당은 사실상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후보 지명이 끝났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뉴햄프셔 유세에 전력을 기울이는 것은 민주당 후보의 돌풍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50여년 만의 최저 수준인 실업률과 그동안의 성과를 제시할 계획이다.
민주당 후보들도 뉴햄프셔에서 기선을 잡기 위해 뛰고 있다. 현재로서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버몬트)이 가장 유력하다. 뉴햄프셔는 샌더스의 지역구인 버몬트 인근으로 그의 텃밭이나 다름없다. 에머슨대가 지난 2일부터 4일까지 조사한 여론조사 결과 샌더스 의원은 뉴햄프셔에서 32%의 지지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피트 부티지지 전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은 17%로 2위,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13%로 3위에 그쳤다. 2016년 경선 때 샌더스는 이곳에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꺾었다. 지금은 샌더스의 지지율이 다른 후보보다 2배 가까이 높지만 부티지지 전 시장이 표를 얼마나 잠식하느냐에 따라 이후 판세는 급격히 달라질 수 있다.
지난 3일 치러졌지만 집계 오류로 최종 발표가 지연 된 아이오와 코커스에서는 부티지지 전 시장과 샌더스 의원이 초접전을 벌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97% 개표 기준 부티지지 전 시장이 26.2%의 득표율로 1위를 지키고 있지만 샌더스 의원이 26.1%까지 치고 올라오며 두 후보 간 격차가 0.1%포인트까지 좁혀졌다. 96%의 개표 때는 격차가 0.7%포인트였다.
/뉴욕=김영필특파원 susop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