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불어닥친 아시아 금융위기로 인해 외국자본이 갑작스레 유출되자 무분별하게 차입에 의존하던 국내기업들은 줄줄이 파산·부도를 겪었고 대량 실직을 초래했다. 우리 정부는 IMF(국제통화기금)에 구제금융을 요청했고, 이를 계기로 기업은 물론 한국 경제의 혹독한 구조조정이 단행됐으니 지금도 ‘IMF’라는 이름에 소스라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의 첨병’이라 불리고 ‘개발도상국의 저승사자’라는 악명을 달고 다니던 IMF가 자성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2011년 9월 미국 ‘월가 시위’로 번져갈 무렵 갓 IMF총재로 선출된 크리스틴 라가르드는 고위 간부회의에서 “왜 우리는 이것을 예측하지 못했는지” 따졌고 “IMF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그간 IMF는 세계 통합과 성장의 사명 아래 자본의 국제적 이동을 강력하게 옹호하는 기관이었다. 문제는 전진에 급급해 커지는 불평등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신간 ‘IMF, 불평등에 맞서다’는 신자유주의에 경도됐다고 비판받던 IMF의 경제학자들이 불평등 문제에 관해 연구한, 일종의 반성문 같은 성격을 띤다. 저자들은 1965~90년 사이에 급성장한 동아시아와 중남미 국가의 경제성장 패턴을 분석한 결과, 불평등의 심화가 경제성장도 멈추게 한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중남미 국가들이 불평등 격차를 절반 수준으로만 줄였더라면 그들의 성장기는 2배로 길어졌을 거라는 얘기다.
불평등이 성장을 저해한다면 불평등을 일으키는 요인은 무엇일까.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는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자본과 달리 노동의 이동은 제한적이기에 “자본의 이동 가능성이 높을 때 기업은 노동자들에게 저임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떠나겠다고 위협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전통적으로는 무역과 기술이 불평등의 원인일 것으로 예상됐지만, IMF가 제안해 온 거시경제정책과 구조 개혁이 그 못지않게 불평등을 악화시킨다는 것을 저자들은 연구를 통해 입증했다. 정부가 긴축정책을 펼수록 분배는 나빠졌으니, 그 영향을 줄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불평등을 줄이려는 정책이 성장을 둔화시킬 우려가 있지만, 저자들은 “재분배는 극단적이지만 않으면 성장을 훼손하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평등한 보건 의료와 교육 기회 제공이 단기적으로 성과를 내기는 힘들지만 불평등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바람직하다. 책은 IMF가 불평등을 바라보는 시각 뿐만 아니라 외부 사람들이 IMF를 보는 시각도 바꾸어 놓는다. 더불어 ‘인간의 얼굴을 한 IMF’를 조금씩 보여주기 시작했다. 1만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