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김영필의 3분 월스트리트] 마력의 버니와 피트·힘없는 바이든…게임은 이미 끝났었다

[아이오와 코커스 현장 가보니]

버니·피트 연설의 귀재 사람 빨아들여

바이든, 들리지 않는 목소리 ‘졸린 조’

현장 ‘샌더스>부티지지≫워런>바이든’

민주, 중도 vs 보수 2030 vs 중장년 싸움

뉴햄프셔 경선결과 향후 판세 영향

美 국민, 한반도·이란 큰 관심 없어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에 다녀왔습니다. 개표 문제가 지금까지 말썽이지만 어쨌든 아이오와 코커스는 민주당 내부 분위기를 처음으로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실제 취재해보니 느낌이 달랐습니다. 처음에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버몬트)의 기세가 너무 거셌던 것이죠. 막판에는 피트 부티지지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도 무섭게 치고 올라왔습니다. 그 결과 막판 뒤집기가 가능했죠.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예상보다 약했습니다. 현장 분위기만 놓고 보면 ‘샌더스>부티지지≫워런>바이든’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아이오와 코커스의 결과는 어느 정도 결정돼 있던 것입니다.

아이오와 코커스가 치러진 3일 밤 버니 샌더스 의원의 연설이 예정돼 있는 홀리데이인호텔 컨벤션센터에 모인 지지자들이 보안 검색을 받고 있다. 이날 행사는 코커스 결과 발표가 늦어지면서 지지다들이 3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했다. /디모인=김영필특파원아이오와 코커스가 치러진 3일 밤 버니 샌더스 의원의 연설이 예정돼 있는 홀리데이인호텔 컨벤션센터에 모인 지지자들이 보안 검색을 받고 있다. 이날 행사는 코커스 결과 발표가 늦어지면서 지지다들이 3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했다. /디모인=김영필특파원



빨려드는 버니<3,000명>…고개 끄덕이게 되는 피트<2,000명>


버니 샌더스 의원의 연설은 한번 듣게 되면 잊을 수가 없습니다. 너무나 강렬하고 쉽고 그 메시지가 뚜렷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1일(현지시간) 시더 래피즈에서 있었던 연설인데요.

“우리는 월스트리트와 건강보험사, 주류회사, 화석연료 기업 그리고 군산복합체(군수기업) 등과 맞서 싸울 것입니다. 도널드 트럼프를 패배시킬 것입니다. 미국을 확 바꿉시다.”

이런 식입니다. 79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의 목소리는 힘이 있습니다. 이날 3,000명이 몰렸습니다. 그의 발음은 분명하고 상대적으로 쉬운 영어를 씁니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것이죠. 트럼프 대통령과 비슷합니다.

2일에는 “내일(3일·코커스 당일)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종말의 시작”이라고 했습니다.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열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의 행사는 축제 같습니다. 참석자들도 “버니! 버니!”나 “버니~샌더스!”를 너무 크게 외쳐대 주변 얘기가 들리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의 행사장에 가보면 열정적인 2030을 중심으로 흑인과 백인, 중장년까지 지지층이 다양합니다. AP통신이 코커스 직전 한 여론조사를 보면 아이오와의 2030 절반가량이 버니를 지지했다고 합니다. “미국을 바꿔보자”는 젊은층의 열망이 강하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그는 좌파입니다. 그의 얘기를 듣다 보면 월가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듯한, 때로는 섬뜩한 느낌이 드는데 현장에서는 분위기에 취하게 됩니다. 외국인인 기자조차 우리가 함께 바꿀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만큼 버니는 마력을 갖춘 정치인이었습니다.

부티지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지지층의 열정도 버니와 비교하면 뒤처지지 않습니다. 지지자들의 환호성이 얼마나 긴지 부티지지가 몇 번이나 “땡큐”를 외쳐야 합니다. 뉴저지 뉴왁공항에서 아이오와의 주도 디모인으로 가는 비행기가 부티지지 지지자들로 꽉 찼습니다. 부티지지도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습니다. 38세의 나이에도 관록이 있고 그의 연설도 힘이 있습니다. 코커스 전날 2,000명을 끌어모은 게 그냥 되는 일이 아닙니다. 부티지지 지지층도 코커스 당일 밤 3~4시간씩 그의 연설을 기다릴 정도입니다. 아이오와의 한 주민은 “그는 스마트하다”며 “군대도 갔다 오지 않았느냐”고 칭찬했습니다. 미국에서는 군복무가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부티지지 지지층도 “바꿔보자”는 생각이 강합니다.


따지고 보면 이때부터 이미 코커스 결과는 나와 있던 것입니다. 득표율이 15% 미만인 후보 지지층의 경우 다른 후보로 바꾸거나 포기해야 한다는 규정에 부티지지가 이득을 봤지만 애초부터 최대 동원인원 기준 샌더스 3,000명, 부티지지 2,000명으로 1·2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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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현지시간) 디모인의 하이어트 중학교 체육관에서 있었던 존 바이든 전 부통령의 유세현장. /디모인=김영필특파원2일(현지시간) 디모인의 하이어트 중학교 체육관에서 있었던 존 바이든 전 부통령의 유세현장. /디모인=김영필특파원


졸린 바이든…2% 부족한 워런

당초 샌더스 의원과 함께 ‘빅2’로 꼽혔던 바이든 전 부통령의 유세는 솔직히 실망스러웠습니다. 2일 디모인의 하이어트 중학교에서 열린 바이든 전 부통령의 행사도 사람들이 꽤 모였습니다. 체육관이 꽉 찰 정도였는데 나중에 보니 언론이 30~40%는 되는 것 같았습니다. 행사가 시작된 후 1시간 넘게 바이든 전 부통령이 나오지 않고 지지자들의 지지연설만 이어지자 외국 기자들 사이에서 “이게 뭐야” 같은 불만이 터져 나왔습니다.

바이든 전 부통령이 나와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의 연설은 느리고 임팩트가 없었습니다. 목소리조차 제대로 들리지 않을 경우가 많았습니다. 웅얼웅얼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그를 “졸린 조(sleepy Joe)”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강렬한 인상을 주는 샌더스 의원의 연설과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중산층을 복원하겠다”나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막겠다”는 메시지는 좋지만 상대적으로 힘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행사장도 상대적으로 조용합니다. 그의 연설이 지루해지자 기자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떠났습니다. 처음에는 발 디딜 틈 없던 행사장도 후반부에는 비기 시작했습니다. 1,100명을 모은 행사였지만 바이든의 몰락은 예정돼 있던 겁니다.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도 힘이 있었습니다. 2일 인디애놀라 심슨칼리지에서 열린 행사에는 한 350명이 모였습니다. 상대적으로 가장 적었지만 그래도 분위기만큼은 열정적이었습니다. 워런 의원은 2층 행사장에 올라가기 전 1층에 모인 지지자 및 기자들과 만나 즉석에서 질의응답을 받았습니다. 자신감이 넘쳐 보였습니다. 이날도 “자산 5,000만달러 이상에게 부유세를 적용할 때가 됐다. 이 돈으로 4,300만 대학생의 학자금 대출을 탕감해주자”고 하자 환호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러면서 행사장에 있는 아이들과 일일이 사진을 찍었습니다. 아이들과 사진을 찍어주는 모습이 개인적으로는 보기 좋았습니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미국의 미래인 아이들을 배려하고 정치참여를 독려하는 모습이 부러웠습니다. 다만, 샌더스 같은 후보에 비해 2% 부족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나름의 카리스마는 있지만 무언가 부족한 듯한 느낌. “러닝메이트인 부통령 후보를 누구로 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트럼프를 꺾을 수 있다”는 워런 지지자 앤드루 던의 얘기에 공감이 갔던 날이었습니다.

2일 인디애놀라 심슨칼리지 1층 로비에서 유세하고 있는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인디애놀라=김영필특파원2일 인디애놀라 심슨칼리지 1층 로비에서 유세하고 있는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인디애놀라=김영필특파원


한반도·이란? 큰 관심 없어…향후 경선 뉴햄프셔 득표율 중요

유세장을 다니면서 느낀 게 하나 있습니다. 민주당 경선, 혹은 대선에 참여하는 지지자들이나 국민들이 우리의 생각과 달리 한반도나 이란 같은 국제문제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죠. 국내에서는 마치 트럼프 대통령이 꼭 대선용으로 북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같은 업적을 통해 국민들에게 자신의 치적을 자랑할 수는 있겠죠. 하지만 미중 무역합의처럼 미국민들에게 직접적인 혜택이 가는 게 아닌 이상 미국민들은 큰 관심이 없다고 보는 게 맞는 듯합니다.

샌더스 의원의 연설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그의 연설에는 △트럼프 타도 △월가·보험사·군수기업 공격 △학자금 부채탕감 △건강보험 문제 △미국의 빈부격차 등이 거론됩니다. 국제문제에 있어서는 유일하게 기후변화 문제를 중요하게 다룹니다. 기후변화는 실제이며 이에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죠.

다른 후보도 비슷합니다. 미국 내부의 문제가 우선입니다. 후보들은 미국민들이 궁금해하는 것, 그리고 듣고 싶어 하는 얘기를 합니다. 물론 언론 인터뷰나 토론회에서는 외교정책에 대한 부분이 들어갑니다. 주요 후보의 정체성을 알아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치열한 전투의 현장인 코커스 유세에서는 이 같은 내용은 보기 힘듭니다. 우리에게는 생사가 달린 문제이지만 미국민들에게는 자신들의 먹고 사는 문제가 더 중요한 것이죠. 미국민들이 한반도에 엄청난 관심을 갖고 있으며 이것이 대선에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는 얘기입니다. 착각하면 안 됩니다. 지난해 만난 대선 여론조사 전문가인 로버트 샤피로 컬럼비아대 교수가 “북핵이나 이란 문제는 미 대선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한 말이 떠오른 날이었습니다.

이제 관심은 11일 있을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예비선거)입니다. 현재로서는 샌더스 의원이 절대적으로 유리하지만 부티지지가 얼마나 득표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즉 얼마나 잘 지느냐에 따라 부티지지 대세론이 나올 수 있습니다. 반대로 바이든 전 부통령은 급하게 됐습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이후 기세를 몰아간다는 전략이지만 뉴햄프셔에서도 대패할 경우 앞날을 예측하기 힘듭니다.

민주 경선도 중도 vs 좌파, 2030 vs 중장년층 싸움으로 가는 모양새입니다.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입니다.
/디모인·인디애놀라·시더래피즈=김영필특파원 susopa@sedaily.com

김영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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