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언어의 벽 넘었다"...92년 '화이트 오스카' 편견 깬 대관식

[기생충 오스카 4관왕]

아시아감독 최초 각본상 영예

백인잔치 오명 쓴 아카데미에

이변 넘은 혁명의 기록 만들어

"한국영화 저력 세계에 알렸다"

9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감독상·각본상·국제영화상을 수상한 ‘기생충’의 봉준호(가운데) 감독, 배우 송강호·조여정·이선균 등이 기쁨을 나누고 있다. /LA=AP연합뉴스9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감독상·각본상·국제영화상을 수상한 ‘기생충’의 봉준호(가운데) 감독, 배우 송강호·조여정·이선균 등이 기쁨을 나누고 있다. /LA=AP연합뉴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백인 잔치’라는 오명을 썼던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이변을 넘어 ‘혁명’을 일으켰다. ‘기생충’은 아카데미 시상식이 시작된 지난 1929년 이래 외국어 영화로는 처음으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하는 등 올해 출품작 중 가장 많은 4관왕에 오르면서 아카데미의 역사를 새로 썼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이날 한 진행자가 “오스카가 참 많이 발전했다. 올해는 그래도 유색인 배우상 후보가 한 명이다”고 꼬집을 정도로 보수적인 성향으로 비판을 받아왔다. 외국어 영화들은 대개 국제영화상 수상 정도에 만족해야 했다. 특히 작품상의 경우 외국어 영화가 11차례나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 내역은 전무했다. 특히 한국인은 미국 사회에서 히스패닉·중국계 등에 밀려 ‘소수 중의 소수’로 꼽히는 만큼 ‘기생충’의 수상은 이변 중의 대이변이자, 오스카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 영화는 1962년 신상옥 감독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출품을 시작으로 꾸준히 아카데미상에 도전했지만 지금까지 수상은 고사하고 후보에 지명된 적조차 없었다.

전찬일 평론가는 “결국 이번 아카데미는 지난 3년간 견지해온 반트럼프 노선에 부응해 ‘다양성’으로 갈 것이냐, 현재 트럼프로 대표되는 미국 정부가 대변하고 있는 ‘아메리칸 퍼스트’로 회귀하느냐가 관건이었는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탄핵 부결 이후 할리우드 회원들이 반트럼프 노선을 견지하며 다양성에 손을 들어준 것”이라며 “그 기준에 완벽히 부응하는 영화가 다름 아닌 ‘기생충’”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봉 감독은 한국은 물론 92년의 아카데미 역사를 하나하나 새로 써내려 갔다. 아시아 감독으로는 처음으로 각본상을 받은 데 이어 올해부터 이름이 바뀐 국제영화상(옛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며 한국 영화 최초의 기록을 썼다. 감독상은 아시아계 감독인 대만 출신의 이안 감독이 ‘브로크백 마운틴’과 ‘라이프 오브 파이’로 두 차례 수상한 적이 있지만 이 작품은 감독만 아시아인인 미국 영화라는 점에서 이날 봉 감독의 수상은 의미가 크다. 외국인 감독이 만든 비영어권 영화로는 봉 감독이 아카데미 역사상 최초로 감독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다. 아울러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것도 1956년 델버트 맨 감독의 ‘마티’ 이후 64년 만이자 두 번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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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의 파격적인 4관왕 달성은 이 영화의 작품성과 대중성이 이미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과 흥행 성적으로 입증된데다 점점 커지는 아시아의 경제·문화적 영향력을 더는 무시할 수 없게 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아카데미의 전통적 선호 장르인 1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한 영화 ‘1917’과 각본·감독·작품상에서 각축을 벌이면서 두 영화 간 ‘갈라 먹기’가 될 수 있다고 전망된 것과 달리 ‘기생충’이 싹쓸이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이날은 ‘기생충의 날’이자 ‘한국의 날’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뉴욕타임스 등 많은 현지 매체들은 아카데미의 성향을 들며 작품상에서 ‘1917’의 우세를 점치기도 했다.



‘기생충’은 이미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시작으로 무수한 영화제에서 수상 행진을 이어왔지만 국내에서도 ‘설마 오스카까지’라며 반신반의하는 목소리가 높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계의 중심지인 미국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오스카마저 ‘기생충’에 파격적인 대우를 해줌으로써 앞으로 한국 영화 산업이 국제적 경쟁력을 인정받고 미국 시장에서 받아들여질 가능성에도 청신호가 켜졌다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봉 감독이 앞서 “내가 어느 날 갑자기 한국에서 혼자 영화를 만든 게 아니라 역사 속에 김기영처럼 많은 위대한 감독이 있었다”며 한국 영화계 전체로 공을 돌렸듯이 이번 수상을 계기로 할리우드 관계자들은 물론 전 세계 관객들이 한국 영화를 보는 시선이 달라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윤성은 평론가는 “봉 감독과 ‘기생충’은 한국 영화사뿐 아니라 세계 영화사를 바꾸어놓았다. 오스카가 추구하는 방향에 박수를 보낸다”며 “92회 시상식은 아카데미에 큰 변곡점이 되는 것은 물론 한국 영화인들에게 큰 자극이자 과제를 안겨준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연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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