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 발행을 위한 중국 당국의 노력이 뚜렷한 성과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이를 의식한 미국의 견제 행보가 다소 복잡해지고 있다. 중국은 CBDC를 통한 신(新)통화 패권주의 의지를 높이고 있지만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아성이 아직은 든든하다고 생각하는 미국은 각국 중앙은행의 CBDC 흐름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도 암호화폐 규제에 무게를 더하는 모습이다.
12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 디지털 상공회의소 조사 결과를 인용해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출원한 CBDC 관련 특허 수가 84개에 달한다고 전했다. 이들 특허 중에는 대출금리 등에 따라 CBDC 공급량을 조정할 수 있는 알고리즘도 포함됐다. 인민은행은 또한 고객이 시중은행에 맡긴 예금을 디지털 위안화로 교환하는 결제 매커니즘도 특허로 냈다. 쉽게 CBDC를 사용할 수 있도록 소비자의 은행 계좌와 연동되는 지갑이나 카드를 만드는 특허도 있었다고 FT는 전했다. 한 특허 전문가는 “이 모든 특허출원은 디지털화폐 시스템을 기존 은행 인프라에 통합하는 것과 관련이 깊다”고 설명했다.
중국이 무더기 특허출원을 한 것은 그만큼 CBDC에 막대한 투자를 했다는 의미다. 인민은행은 지난 2014년 주요국 중앙은행 중 처음으로 디지털화폐 연구를 시작했다. CBDC 운용을 위해 공상은행·농업은행·중국은행·건설은행 등 4대 국유 상업은행과도 손을 잡았다. 외신들은 중국이 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 교역에 CBDC를 활용해 위안화의 국제화를 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의 디지털화폐 발행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11월 판이페이 인민은행 부행장은 디지털화폐의 설계와 표준 제정, 연합 테스트 업무가 기본적으로 마무리된 상태라고 밝혔다. CBDC가 선전과 쑤저우 등지에서 시범 사용될 것이라는 보도가 지난해 12월 중국에서 나온 만큼 연내 발행이 유력하다.
중국이 독주하는 사이 미국은 여전히 CBDC 발행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은 이날 미 상원 금융위원회에 출석해 자신은 물론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도 CBDC 발행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면서도 ‘언젠가는’ 다시 생각해볼 수도 있다고 밝혔다. 다만 파월 의장은 같은 날 “세계의 모든 주요 중앙은행이 현재 디지털화폐를 깊이 들여다보고 있다”면서 “앞장서는 것이 연준의 책임”이라고 밝힌 만큼 개방적인 입장으로 바뀌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앞서 5일 레이얼 브레이너드 연준 이사도 “달러화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우리가 CBDC의 정책개발과 연구 앞에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달러 패권을 놓지 않으려는 연준이 실제 발행 여부와 관계 없이 CBDC 발행에 대한 국제표준 제정을 놓고 주도권 경쟁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페이스북이 발행을 추진하는 암호화폐 리브라에 대한 경계감도 재차 드러냈다. 므누신 장관은 이날 상원에서 “암호화폐 및 전자결제 체계와 관련한 새 규제를 조만간 발표할 것”이라며 리브라에 대해 “매우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민간 차원의 암호화폐가 광범위하게 통용되면 자금세탁 등 불법행위에 악용될 우려가 크다는 이유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