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동십자각]끓는 물 속의 개구리들

금융부 서은영 차장




요즘 보험 업계에서 화제가 된 말은 ‘질서 있는 퇴출’이다. 보험연구원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안철경 보험연구원장이 “감독자는 공정경쟁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경쟁에서 도태된 보험회사의 질서 있는 퇴출을 유도해야 한다”고 말한 데서 비롯된 것인데, 공통적인 평가는 ‘누구나 하고 싶지만 입 밖에 꺼내지 못한 말을 안 원장이 용기 있게 했다’는 것이다.

보험업은 전례 없는 위기에 처했다. 생명보험 업계 2위인 한화생명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전년보다 87% 감소했다. 자산 규모만 142조원에 달하는 회사가 고작 연간 572억원의 순익을 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저금리·저성장에다 저출산·고령화로 보험 업계가 동반 위기에 처했다지만 일부 회사의 위기는 이처럼 회생 불가능이라는 진단을 내릴 수밖에 없을 정도로 참혹하다. 그 이유는 장기위험을 관리하는 업의 본질과 동떨어진 주먹구구식 극약 처방에 있다.


일각에서는 보험업이 살려면 자유로운 진입과 퇴출을 통한 옥석 가리기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지금처럼 몸집이 크다는 이유로, 무너질 경우 소비자 피해가 크다는 이유로 경쟁력을 잃은 불량 생보사의 생명 연장에만 매달리는 하향평준화 방식의 대책을 이어간다면 보험업 전체가 부실화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길고 긴 불황의 터널을 지나는 동안 살아남을 기초체력을 갖춘 보험사로서는 이대로라면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공멸하는 셈이다. 소비자 후생 못지않게 공정경쟁을 유도하는 감독제도와 건전한 퇴출제도의 설계가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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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 부담과 부실위험평가를 정교화해 보험사의 자본확충 부담을 높이는 새 국제보험회계기준(IFRS17)과 신지급여력제도(K-ICS) 시행이 공식화된 후에도 상당수의 보험사는 고금리 저축보험과 치매보험·양로보험 등 보험사의 금리 리스크를 키우는 상품을 앞다퉈 팔며 몸집 키우기에 치중했다. 급격한 금리 하락과 의료환경 등의 변화로, 판매경쟁에 급급해 위험률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판매한 과거 상품은 보험사들의 위기를 가중시키고 있다. 그야말로 끓는점 직전까지 불 위에 발을 딛고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끓는 물 속 개구리’의 전형이다.

국내에서는 보험사 정리제도에 대한 정교한 분석이 이뤄진 적이 없다. 부실 보험사의 계약을 살아남은 보험사들이 고스란히 떠안는 정리 방식이 주를 이뤘고 보험 산업이 성장 사이클을 타고 있던 시기라 인수합병(M&A)도 활발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공정경쟁을 막고 단기적 비전으로 장기상품을 취급하는 보험사에 경종을 울리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질서에 반하는, 회사의 장기성장과 동떨어진 주먹구구식 경영 행태를 이어갈 경우 정부의 구제금융이 가동되는 것이 아니라 퇴출 절차를 밟게 된다는 본보기를 보여주는 것이다.
supia927@sedaily.com

서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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