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의 뛰어난 수소차 기술과 정부의 수소경제 육성 정책으로 한국 수소산업의 위상이 최근 높아졌음을 실감합니다. 이를 계기로 앞으로 주요국들과 수소 연합을 결성해 글로벌 수소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앞장서겠습니다.”
문재도 수소융합얼라이언스추진단(H2KOREA) 회장은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구 H2KOREA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이같이 강조했다. 지난해가 국내 수소경제 육성을 위한 기반 마련에 집중하는 시기였다면 올해는 세계 시장으로 수소경제의 외연을 넓히는 데 방점을 찍겠다는 것이다. 문 회장은 “외국에서는 한국 정부와 기업의 노력을 주시하고 있다. 잠재적 협력국들과 향후 글로벌 수소경제를 어떻게 이끌어나가고 각국이 어떤 역할을 맡을지에 대해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있다”며 “현재 유럽연합(EU)과 세계 수소산업의 현황을 조사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민관 협의체로 지난 2017년 4월 출범한 H2KOREA는 정부의 수소경제 정책 입안을 돕는 전담 지원기관이자 국내 수소경제 진흥의 컨트롤타워다. 당초 단장 체제로 출범했다 지난해 9월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실 산업통상자원비서관과 산업통상자원부 제2차관을 역임한 문 회장이 초대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차관급으로 격상됐다. 현재 중앙부처인 산업부와 지방자치단체, 한국가스공사 등 에너지 공공기관과 정부출연연구원을 비롯해 현대차·효성·SK가스·린데에스지코리아·에어리퀴드코리아·두산퓨얼셀 등 기업까지 총 73개의 민관 회원사를 보유하고 있다.
문 회장은 “정부가 수소경제로의 이행을 모두 추진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다양한 이해관계와 갈등에 시작 단계에서부터 효율적으로 대응하고, 수소경제로의 효율적인 이행을 추진하는 것이 추진단의 목표”라며 “관련 부처와 기관 및 업체의 창구 역할을 하고 정책과제 수립, 제도 개선 등 맡은 임무가 다양하다”고 소개했다. 해외에서 진행되고 있는 각종 수소 관련 프로젝트에 국내 중견·중소기업이 개발한 제품·설비가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 일도 하고 있다. H2KOREA는 현재 4개의 실(정책기획·기반구축·기술개발·대외협력)로 구성돼 있다. 문 회장은 “각 분야별로 회원사가 참여한 워킹그룹을 구성하고, 참여하는 국내 전문가만도 100여명”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는 국내 수소산업의 전환기라고 볼 수 있다. 정부는 지난해 1월 연간 수소차 10만대 생산, 수소충전소 전국 1,200개 확대 등을 핵심으로 한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발표했다. 이후 해가 바뀐 지난달에는 ‘수소경제 육성 및 수소안전관리법(수소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며 세계 최초로 수소산업 진흥과 수소 유통, 안전까지 총망라한 법제화가 이뤄졌다. 문 회장은 “현재 미국과 일본·EU 등 주요국 역시 수소경제 육성에 힘을 쏟고 있으나 한국은 수소경제에 대한 법적 근거까지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현재 미국과 일본·독일·호주 등 선진국들은 빠른 경우 2000년대 초부터 정부 차원의 로드맵을 수립해 수소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 역시 2017년 ‘중국 수소 이니셔티브’를 선언하고 오는 2030년까지 수소차 100만대, 수소충전소 1,000개 설립을 포함해 신재생에너지, 원자력, 메탄 개질(改質) 등을 이용한 수소 제조기술 개발에 착수했다. 문 회장은 “최근 일본이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수소 기반 연료전지를 활용해 분산형 전원 개발에 속도를 냈고, 차츰 글로벌 수소산업의 주도권을 쥐어가는 형국”이라며 “올 7월에 개최될 예정인 도쿄올림픽에서도 ‘수소 강국’으로서의 면모를 나타내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도쿄올림픽을 ‘수소 올림픽’으로 치르겠다고 일찌감치 선언했으며 올림픽선수촌을 ‘수소 에너지 타운’으로 조성하고 수소차를 올림픽 개최지의 주요 이동수단으로 활용하는 등 도쿄올림픽을 ‘수소 쇼케이스’의 장으로 만든다는 계획을 세웠다.
시작은 선진국이 빨랐지만, 그렇다고 한국이 뒤처진 것은 아니다. 수소법 법제화는 세계 최초지만 수소산업 자체로 따지면 우리나라가 후발주자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국내 기업이 보유한 높은 수소차 기술력은 국내 수소경제의 전반적인 수준을 끌어올릴 원동력이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친환경 수소경제 구현을 위한 마스터 플랜’이 발표된 후 지속적인 연구개발(R&D)을 통해 수소차 분야에서는 세계적인 기술력을 자랑하는 수준에 와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현대차의 ‘넥쏘’다.
다만 수소 생산과 보급·유통에 이르는 전반적인 기술 수준은 선진국에 뒤져 있다. 문 회장은 “수소경제를 이행하기 위해서는 많은 종류의 기술들을 개발해야 하지만 모든 기술을 빠른 시일 안에 전부 개발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따라서 국내 실정에 맞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면 수소차를 운행하기 위해서는 수소충전소가 필요하고, 수소충전소에 수소를 공급받고 저장할 수 있는 이송수단과 저장장치가 요구된다. 또 여기에 필요한 수소를 생산해야만 한다. 전(全) 주기에 걸친 기술개발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다. 문 회장은 수소경제 발전을 위해 추진단의 명칭처럼 민간과 공공 부문의 ‘얼라이언스(융합)’가 필수적이라고 봤다. 정부가 주도하는 ‘톱다운’ 방식과 민간이 현장에서 끌어올리는 ‘보텀업’ 형식이 서로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외에서 수소경제를 키우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상당수 남아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먼저 수소의 경제성이 낮다는 문제가 있다. 수소가 과연 기존 에너지를 대체할 수 있을지, 수소의 대량 생산은 가능할지에 대한 의문이 여전한 것이다. 정부는 ‘그린 수소’, 즉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를 활용해 이산화탄소 배출이 없는 친환경 수소를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마련했지만 재생에너지의 발전 단가가 원자력이나 석탄에 비해 높은 만큼 수소 생산비용이 높아질 것이라는 우려가 만만치 않다. 이에 대해 문 회장은 “국내 재생에너지 수준이 활용도를 크게 높여 수소 생산을 늘릴 만큼 되려면 시간이 걸리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렇다고 현 상태에 그대로 머무를 수는 없지 않나. 재생에너지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려면 ‘트랙 레코드’를 계속 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소와 관련한 기술개발이 이어지고, 시설과 제품 생산이 늘면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리라는 것 역시 문 회장의 생각이다. 국내 수소 생태계 구축이 수소의 낮은 경제성을 높일 돌파구라는 분석이다. 문 회장은 규모의 경제를 이룰 시점을 2022년으로 예상했다. 그는 “예를 들어 수소차 생산이 증가하면 대당 수소차 생산 단가는 현재 7,000만원에서 2022년 6,000만원으로 1,000만원가량 낮아질 것”이라며 “수소충전소도 민간자본의 참여가 앞으로 활발해지면 한 곳당 30억원인 구축비용이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수소차 연구가 처음 시작된 2000년 초만 하더라도 고가의 백금이 많게는 수백g씩 사용됐는데, 지금은 수소차 한 대당 사용량이 30g으로 낮아졌다. 앞으로 R&D를 통해 백금 사용량이 10g까지 감소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수소차 가격을 떨어뜨리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소 생산의 경우 석유화학 공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을 활용한 부생수소와 수소 생산기지를 통해 생산되는 추출수소, 재생에너지를 통한 수(水)전해 방식 등을 모두 활용해 2040년까지 연간 526만톤의 수소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문 회장의 전망이다.
“국내에서 수소가 주된 에너지로 사용된다면 현재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체계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 즉 이산화탄소와 미세먼지 배출로 인한 환경오염, 93%에 달하는 에너지 해외의존도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또 갈수록 강화되고 있는 화석연료 기반 제품에 대한 국제무역 규제에 따른 자동차·조선 등 주력 제조업의 경쟁력 약화 등의 문제도 해결이 가능해집니다.”
폭발 위험성 역시 수소 확산에 대한 대중의 부정적인 인식을 부추기는 요소다. 지난해 5월 8명의 사상자를 낸 강릉 수소탱크 폭발사고는 불안감을 확산시켰다. 수소 연료전지 발전소 설립은 인천과 경기·강원·대전 등 각지에서 주민 반대에 직면했다. 문 회장은 “폭발사고가 난 강릉 수소탱크의 경우 제도권 밖에 있는 연구소의 실험시설에서 발생한 것으로, 국내법과 국제기준을 적용받는 수소충전소나 연료전지 발전소와는 큰 차이가 있다”면서도 “그럼에도 주민이 불안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민간과 공공이 힘을 합쳐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강조했다. 문 회장은 수소법이 수소 시설의 안전성을 높이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수소법은 수소안전 전담 기관을 지정하고 저압 수소용품 및 사용시설에 대한 안전규정 역시 담고 있다. 정부는 안전규정 적용 대상 범위는 시행령과 규칙에서 세부적으로 정한다는 방침이다.
문 회장은 지난해 말 정부가 경기 안산과 울산시, 전북 전주·완주 3곳을 수소 시범도시로 지정한 것을 수소 안전성과 주민 수용성에 대한 인식을 개선할 계기로 봤다. 안산시는 노후 산업단지를 수소 생산단지로 변모시키고, 울산은 수소 시설에 사물인터넷(IoT) 등 신기술을 적용한다. 완주·전주는 수소 광역공급 기지와 수소 이용도시로 각각 변화할 예정이다. 문 회장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수소 시범사업이 성과를 거둔다면 수소에 대한 거부감이 점차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문 회장은 수소경제 확대를 위한 민간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수소차나 수소 드론, 연료전지 발전은 기술개발이 상당 부분 이뤄져 시장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단계까지 왔지만 수소 생산이나 유통, 기타 이동수단 분야는 기술 성숙도가 떨어진다”며 “따라서 민간 차원의 참여와 투자 확대가 절실하다. 특히 수소 활용은 소재·부품 제조기업과 중소 수출업체에도 좋은 사업 기회가 될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정리=조양준기자 mryesandno@sedaily.com·사진=성형주기자
◇He is... △1959년 전남 보성 △광주제일고 △서울대 경제학과 △1981년 행정고시 25회 △2011년 지식경제부 산업자원협력실장 △2013년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실 산업통상비서관 △2014년 산업통상자원부 제 2차관 △2017년 한국무역보험공사 사장 △2019년 수소융합얼라이언스추진단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