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해리엇 터브먼




“경계선을 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전과 똑같은 나인가 확인하기 위해 내 손을 쳐다보았다. 그 모든 것이 그렇게 찬란해 보일 수가 없었다.”


흑인 인권운동가 해리엇 터브먼(1822~1913년)이 농장을 탈출할 당시를 회고하며 남긴 말이다. 태어날 때부터 노예였던 그는 사춘기 시절 도망치는 동료 노예를 돕기 위해 주인에게 반항하다가 둔기로 머리를 맞아 큰 상처를 입었다. 당시의 충격으로 이마에 움푹 팬 흉터가 남았고 평생 수면발작에 시달렸다. 이렇게 살 수 없다고 결심한 그는 1849년 탈출을 감행한다. 그즈음 남부의 흑인 노예를 북부로 탈출시키는 조직인 ‘지하철로’가 활동 중이었는데 터브먼은 1850년부터 1860년까지 19차례나 ‘지하철로’ 차장(노예들을 탈출시키는 인도자를 뜻하는 은어)으로 남부에 숨어 들어가 300명이 넘는 흑인을 탈출시켰다. 남북전쟁 때는 스파이로 잠입해 남부의 중요한 군사정보를 빼돌려 북부의 승리에 힘을 보탰고 이에 북부 군인들 사이에서는 ‘터브먼 장군’이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남다른 희생과 활약 덕에 ‘흑인들의 모세’로 칭송됐지만 전쟁이 끝난 후에는 흑인이라는 이유로 보상조차 받지 못했다.

관련기사



최근 미국에서는 터브먼의 이름이 새삼 회자되고 있다. 원유나이티드은행이 ‘블랙 히스토리의 달(2월)’을 맞아 터브먼을 새긴 직불카드를 발매했다가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한 것. 4년 전 20달러 지폐의 모델을 앤드루 잭슨 전 대통령에서 터브먼으로 교체하기로 했지만 차일피일 미뤄지자 은행은 이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터브먼 카드를 내놓았다. 그런데 엉뚱한 곳에서 논란이 빚어졌다. 카드 속 터브먼이 양팔을 교차하는 자세를 취했는데 영화 ‘블랙팬서’에 등장하는 가상의 왕국 ‘와칸다’의 인사법과 같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위인을 희화화했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앞으로 20달러 지폐모델 변경 문제는 어떻게 될까. 의견이 분분하다. 일부에서는 앤드루 잭슨의 추종자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폐의 주인공을 바꾸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을 한다. 반면 대선을 앞둔 만큼 흑인 표심을 잡기 위해 의외의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다. 과연 트럼프가 어떤 선택을 할지 지켜볼 일이다. /정민정 논설위원 jminj@sedaily.com

정민정 논설위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