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4관왕에 오른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 외에도 서울에서 수많은 걸작을 카메라에 담았다. 봉 감독의 첫 장편영화 ‘플란다스의 개’도 송파구의 한 아파트를 배경으로 했으며 대중에게 인지도를 높인 ‘살인의 추억’의 한 장면도 한강 난지도에서 촬영됐다. 봉 감독의 영화에 활용된 서울 속 촬영장소를 찾아 떠나보는 건 어떨까.
서울 성북구 선잠로 8길은 기우(최우식)가 박사장(이선균)네 집을 찾아가는 장면에 활용된 곳이다. 박사장네 주택은 전주 영화세트장에서 촬영돼 찾아볼 수 없지만 고급 주택가로 둘러싸인 이 골목은 영화 속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박사장네 골목’에서 기념촬영을 마쳤다면 선잠로를 따라 ‘길상사’를 방문해보자. 지난 1997년 개원한 절은 법정 스님이 머문 곳으로 유명하다. 2005년에는 김수환 추기경도 수녀님들과 함께 길상사를 방문해 행사를 개최하기도 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사찰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어 참선과 명상을 수행할 수 있다.
봉 감독이 고등학교 재학시절, 잠실대교에서 괴물체를 목격한 경험으로 만든 영화 ‘괴물’은 여의도한강공원에서 촬영됐다. 버스와 지하철 등 대중교통 접근성이 좋아 인근 지역 주민들이 즐겨 찾는 장소기도 하다. 마포대교와 원효대교 사이에는 영화 ‘괴물’의 괴생명체를 재현한 높이 3m, 길이 10m 크기의 조형물이 있다. 여의도한강공원은 즐길거리도 풍성하다. 봄에는 벚꽃축제, 가을에는 세계불꽃축제가 개최되며 그 외에도 각종 공연과 마라톤이 열린다.
봉 감독의 첫 넷플릭스 장편영화 ‘옥자’에서 괴물 옥자가 갇혀 있던 트레일러를 탈출해 도망친 곳이 회현지하쇼핑센터다. 당시 촬영진은 가게들이 실제로 영업하고 있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상인들에게 밤새 문을 열어달라 부탁했고 상인들도 흔쾌히 밤을 함께 새며 영화 촬영장면을 관람했다고 한다. 옥자 촬영 당시 현장에 있었던 화장품 가게 주인 김은자(62)씨는 “배우들이 밤새도록 복도를 뛰어다니며 오갔던 것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며 “잘됐다는 소식을 들어 기쁘다”고 말했다. 쇼핑센터에는 지상에 위치한 서울중앙우체국과 한국은행의 영향으로 우표·기념화폐 상점이 입점하기 시작했고 이후 레코드판 가게와 중고서점 등도 들어와 찾는 이의 향수를 자극한다.
/글·사진=한민구기자 1min9@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