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표준감사시간제를 시행한 지 불과 1년 만에 변경 검토에 착수하면서 신외감법(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의 부작용을 지적하는 재계의 입장에 힘이 실리게 될 전망이다. 표준감사시간제는 지난 2018년 11월 시행된 신외감법에 따라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와 함께 도입됐다. 신외감법 시행을 위한 논의 과정에서 한국상장회사협의회 등 재계 단체는 “검증되지 않은 제도를 도입하는 것보다는 회계 부정행위 처벌 강화 등 근본적인 처방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20일 재계에 따르면 시행 첫해인 ‘2019 사업연도’를 결산하는 정기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신외감법이 도입 취지인 회계 감사 개선 효과보다는 감사 보수 인상·혼란 증가 등 부작용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금융위의 표준감사시간제 변경 검토는 이러한 의견을 받아들인 것으로 풀이된다.
일정 수준 이상의 감사 시간 보장을 위해 지난해 2월부터 시행된 표준감사시간제는 업종·자산 규모에 따라 투입돼야 할 감사시간을 정하고 있다. 자산 규모로는 개별 재무제표 기준 2조원 이상이면서 연결 재무제표 기준 5조원 이상은 그룹1, 개별 기준 2조원 이상은 그룹2, 5,000억원 이상 2조원 미만은 그룹3 등 총 11개 그룹으로 나눠져 있다. 그룹1·2에 대해서는 2019 사업연도부터 표준감사시간제가 전면 적용됐다.
표준감사시간제 변경은 우선 제조업·서비스업·건설업·금융업·도소매업·기타 6개로 나눠진 업종 기준 세분화부터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 및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업종 기준이 지나치게 단순화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를테면 자산 규모가 비슷한 제조업 기업 중에서도 감사 시간이 많이 투입될 필요가 없는 기업이 있고, 그렇지 않은 기업이 있는데 획일적으로 제조업의 기준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그룹별로 적용되는 감사시간 가감 요건도 불합리하다는 의견이 있다. 그룹1의 경우 연결 재무제표 작성시 10% 가산되며 그룹2에서는 당기순손실이 20%, 감사의견 비적정은 45%가 각각 가산된다. 이에 대해 한 재계 관계자는 “왜 특정 조건에 따라 감사시간이 가산·차감되는지 합리적인 근거가 없다”며 “예를 들어 당기순손실에 20%를 가산한다면 당기순이익은 20%를 줄여주는 게 맞는데 그런 기준은 없다”고 지적했다. 전년도 감사시간이 하한선으로 설정돼 다음연도에는 감사시간이 늘어날 수 밖에 없는 구조, 참고용 가이드라인으로 마련된 감사시간 기준을 실제로는 감사인들이 기업에는 의무 규정처럼 최소한의 기준으로 적용하고 있는 것 역시 타당하지 않다는 비판도 나온다.
감사인 독립성 강화를 위해 기업이 6년간 감사인을 자유 선임하고 이후 3년간 증권선물위원회가 지정한 감사인을 선임하도록 하는 감사인 주기적 지정제에 대해서도 우려가 높다. 감사인 교체에 따른 전문성 저하·감사 보수화 및 비용 증가 등이 대표적 문제로 지적된다. 신외감법의 한계 때문에 제도가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는 전망도 나온다. 정도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신외감법 도입 후 기업의 비용은 분명히 늘었지만 재무제표를 통해 공개되는 기업의 재무정보 가치가 얼마나 더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라며 “자본시장에서 기업 재무제표의 정보 가치를 높일 수 있는 후속 조치가 없다면 신외감법의 지속 가능성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경훈·양사록기자 socoo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