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의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가 정보기술(IT) 시장에서 지배적 위치에 있는 기업들은 수집한 데이터를 경쟁사들과 공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구글·페이스북 등 유럽에서 막대한 데이터를 축적한 미국 기업들을 겨냥한 것으로 기술 주권을 되찾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19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인공지능(AI)과 데이터 분야를 아우른 디지털 전략 초안을 공개했다. 그가 지난해 12월 공식 취임하면서 집행위에 100일 이내 새 디지털 전략 초안을 내놓으라고 지시한 뒤 나온 백서다. 집행위는 이번 초안을 바탕으로 올해 말께 구체적인 조치들을 발표한 뒤 입법화 작업에 나설 예정이다.
초안에서 특히 눈길을 끈 대목은 디지털시장을 주도하는 거대기업에 정보공유 의무를 지우겠다고 밝힌 점이다. 금융·자동차 제조사들은 각사가 수집한 고객정보를 제3자에 제공하도록 돼 있는데 디지털 시장에서는 이러한 조치가 그동안 없었다는 것이다. EU가 유럽에서 막대한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데이터를 독점해왔다고 주장하는 페이스북·애플·구글 등을 겨냥한 셈이다. 집행위는 “공정하고 투명하며 합리적인 조건에서의 데이터 접근이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며 데이터 공유 의무화를 시사했다.
EU는 연간 AI 부문 투자액을 32억유로에서 200억유로(약 25조8,700억원)로 대폭 늘리고 오는 2030년까지 데이터 단일시장을 구축하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EU 회원국 소속이라면 의료·금융·에너지 등 각종 정보를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마련한다는 구상으로 미국의 구글과 페이스북, 중국의 텐센트와 바이두 등에 대적할 수 있는 회사를 키우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또 미래 디지털 기술의 핵심인 AI 규제를 정비하겠다면서 미중 IT기업들이 유럽에서 무분별하게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행위를 막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이번 디지털 전략 초안을 놓고 미래 디지털 기술 부문에서 미중에 주도권을 빼앗겼다고 판단한 EU가 본격적인 견제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초안에 대해 “기술 주권을 되찾으려는 EU의 노력”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