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블랙스완’이 중국 경제를 뒤흔들자 중국 당국이 금리 인하를 비롯한 본격적인 부양 조치에 나섰다. 다만 코로나19의 전망이 불투명한데다 대미 무역전쟁의 후유증으로 부채가 크게 늘어나는 등 이미 심각한 내상을 입은 상태여서 무작정 부양 강도를 높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20일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사실상의 기준금리인 1년 만기 대출우대금리(LPR)를 0.1%포인트 인하했다. 이날 인민은행은 3개월 만에 LPR을 인하하면서 4.05%로 고시했다. 당초 대출 기준금리(현행 4.35%)와 간격이 너무 벌어지면 안 된다고 봤지만 결국 큰 폭의 인하를 단행했다.
인민은행은 전날 밤 펴낸 분기 통화정책 보고서에서도 코로나19 사태를 직접 언급하며 경기 안정을 위한 중앙은행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겠다고 천명했다. 특히 “대담하게 온건한 통화정책의 유연성을 강화할 것”이라며 추가 조치 가능성도 시사했다.
코로나19의 타격을 받은 기업을 대상으로 한 지원방안도 나왔다. 전날 중국 국무원 상무위원회는 리커창 총리 주재로 대책회의를 열어 기업·사회보험료를 감면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기업에서 보장하는 양로·실업·산재보험의 부담금을 단계적으로 면제할 예정이다. 중소기업은 2∼6월 3대 보험료를 면제받을 수 있으며 대기업은 2∼4월 보험료 절반이 감면된다.
이와 함께 지방정부를 통해 코로나19 사태로 경영이 악화한 국유기업을 인수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하이난성 정부는 하이난항공(HNA)그룹을 인수해 자산의 상당 부분을 중국국제항공(에어차이나), 중국남방항공, 중국동방항공 등에 매각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HNA그룹은 현재 중국 4위 민영항공사인 하이난항공 등 14개 항공사, 약 900대의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다. 이번 매각이 성사될 경우 전 세계 항공산업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홍콩 역시 지난해 대규모 시위에 이어 올해 코로나19 확산으로 경기침체에 빠지자 총 300억홍콩달러(약 4조6,000억원)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실행하기로 했다. 이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홍콩 정부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은 소매·요식·운수·여행업 및 문화계 등에 총 169억홍콩달러(약 2조6,000억원)의 현금을 지원한다. 또 방역대책 관련 홍콩 병원관리국 지원 및 의료용 마스크 생산 확충, 보호장비 구매 등에 총 102억홍콩달러(약 1조6,000억원)를 쓸 예정이다.
지난 2년여간의 미중 무역전쟁으로 내상을 입은 중국 경제는 최근 코로나19로 심각한 상황이다. 중국 내 사망자가 이미 2,100명을 넘어서며 2003년 사스 때의 8배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 인구보다 많은 6,000만명의 인구를 가진 후베이성은 지난달 23일 봉쇄 이후 한달째 경제가 완전히 마비됐다. 중국 전체도 코로나19 방역이 최우선으로 취급되는 분위기에서 인력복귀·생산·물류 등에 큰 차질이 벌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모건스탠리는 이날 중국의 1·4분기 경제성장률이 3.5%, 올해 전체는 5.6%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앞서 블룸버그 인텔리전스가 전망한 1·4분기 성장률 4.5%도 낮은 것이다. 켄 청 미즈호은행 선임 애널리스트는 “경기회복과 취업이 부진할 경우 중국이 추가 금리 인하나 지급준비율 인하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다만 미중 무역전쟁 과정에서 이뤄진 부양책으로 막대한 채무가 쌓이고 있어 중국이 지속적으로 공격적인 통화완화 정책이나 재정정책을 펴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 많다. 정부 싱크탱크인 사회과학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중국의 총부채 비율은 245.4%로 전년 말보다 6.1%포인트 상승했다. 최근 중국의 저명한 경제전문가 모임인 ‘중국 재부관리 50인 포럼’이 지난해 2.8%였던 재정 적자율을 3.5%까지 크게 높이고 1조위안(약 170조원)의 특별국채를 발행해야 한다고 공개 건의했지만 중국 정부는 여전히 신중 모드다.
/베이징=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