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연구개발(R&D) 혁신을 위한 특별법’에는 연구현장의 묵은 과제를 전향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이 담겨 있는데 3년째 국회에서 표류해 안타깝습니다.”
박현민(57·사진) 신임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은 임명장을 받기 전날인 지난 23일 서울의 한 식당에서 서울경제와 인터뷰를 갖고 “수십년간 연구자들이 제기해온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R&D특별법이 20대 국회에서 꼭 통과돼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평소 과학기술 시스템과 문화의 혁신을 강조해온 그는 1996년 독일 아헨공대 박사후연구원을 하다 표준연에 입사해 신물질 구조연구와 나노물질 안전성 연구를 했다. 2011년 국가과학기술위원회 미래성장조정과장으로 국가 R&D 정책·예산·평가 등의 업무를 수행했고 이후 표준연에 복귀해 부원장을 지냈다.
특별법은 부처와 기관마다 다른 R&D 법령·지침·매뉴얼을 단일화해 연구자의 행정 부담은 줄이고 자율성을 강화하되 연구윤리는 강화하자는 취지다. 부처 합의하에 2018년 말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국회에 제출했으나 야당이 “과기정통부가 정부 R&D에 시어머니, 옥상옥 역할을 하려 한다”며 반대해 상임위원회 소위원회 문턱에 걸려 있다. 박 원장은 “단계적 연구비 정산, 기초과제에서 중복과제 인정, 3책·5공(연구책임자는 3개, 연구자는 5개 이내에서 연구 수행) 완화, 연구 지원인력의 존재 인정, 전문기관 실태평가, 부정행위 시 10년 이내 과제 참여 제한 등 선진 연구환경을 위한 조항이 많다”고 설명했다.
국가 R&D 과제의 기획·평가 방식 변화도 촉구했다. 그는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융합과제를 늘려야 한다. 안정성 위주의 R&D에서 탈피해 도전적 과제를 확대하고 성실 실패를 좀 더 넓게 인정하며 평가 횟수도 감축해야 한다”며 “연구 제도도 포지티브 방식에서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전환해 연구자의 자율성을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원장은 “25개 정부 출연 연구기관의 역사가 평균 40년 이상이고 50년이 넘는 곳도 있다. 안정감 있고 무게감이 느껴져야 하나 여전히 외부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며 “관련 이해관계자 모두의 책임으로 표준연은 문제를 찾아 해결하는 선도자(first mover)형 연구로 국민과 사회에 보답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제조업 사회에서 데이터 중심 사회로의 변환기에 맞춰 표준연의 측정기술도 제조업 특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측정이 정확하지 않아 국민 안전에 문제가 되는 것에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방사능 안전, 터널·교량·다리 안전, 미세먼지, 나노물질, 식품, 온실가스 등에서 국민이 안심할 수 있도록 ‘안전연구소’를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는 뜻도 처음으로 털어놓았다. 선도형 연구에 관해서는 현재 표준연의 앞선 양자측정기술을 확장해 실제 미래 양자컴퓨터 개발을 시작하는 프로젝트를 예로 들었다.
그는 “세계 최고의 표준·측정과학 연구원을 비전으로 제시하고 연구원들이 열정과 패기로 연구에 전념하고 협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며 “이렇게 신뢰 기반이 구축되면 연구 성과는 자연스레 뒤따라올 것이다. 3년 임기 중 첫 1~2년의 첫 단추를 잘 끼우겠다”고 힘줘 말했다. /고광본선임기자 kbg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