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바쁜 현대인들에게 침대를 산다는 건 꽤 힘든 일입니다. 매장을 직접 방문해 제품을 고르고, 기사님과 약속을 잡아 집에 설치하기까지… 시간과 비용이 소모되는 일투성이죠. 하지만 불과 3~4년 사이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매트리스를 압축해 돌돌 말아 박스에 넣어 판매하는, 이른바 ‘롤팩 매트리스’가 대세가 되며 침대 구입부터 설치까지 누구나 손쉽게 할 수 있는 세상이 됐거든요.
미국에서 시작된 ‘롤팩 매트리스’의 유행은 영국 등 유럽을 거쳐 우리나라로까지 도착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이 롤팩 매트리스 시장을 연 선구자 중 하나가 바로 한국 회사라는 사실, 알고 계실까요? 아마존에서 본격적으로 롤팩 매트리스가 판매되기 시작한 2014년부터 판매 1위 자리를 줄곧 지키고 있는 브랜드 ‘지누스’의 이야기입니다. 지누스는 2018년 기준 온라인 매트리스 시장 점유율 27.3%를 차지하는 것은 물론 북미 아마존 베스트셀링 매트리스로 유명세를 떨쳤고 있습니다. 아마존 판매 TOP5 중 4개가 지누스 제품일 때도 허다했죠. 대체 지누스는 어떻게 미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걸까요.
지누스의 인기 비결 첫째, 합리적인 가격입니다. 가구점에서 파는 침대 가격이 평균 200만~300만 원을 넘나드는데 반해 지누스의 가격은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죠. 실제로 아마존 베스트셀러이자 지누스의 대표작인 ‘그린티 메모리폼 매트리스’는 지금도 싱글 사이즈 기준 15만 4,000원에 팔리고 있습니다. 이 말도 안 되는 가격의 비결은 지누스가 일으킨 ‘혁신’과 연결됩니다. 지누스는 매트리스를 압축해 돌돌 말아 박스에 넣어 판매하는 ‘매트리스 인 어 박스(Mattress-in-a-box)’ 기술을 통해 물류·유통 비용 등을 크게 줄이고 제품값 역시 낮추는데 성공했죠.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면 침대를 사고파는 과정을 살펴보죠. 침대는 가구 중에서도 비싼 편에 속하는데, 그건 바로 침대의 거대한 크기와 육중한 무게 탓이 큽니다. 덩치가 큰 만큼 제품을 둘 공간도 넓어지고 배송·설치하는 사람들도 많이 필요한 거죠. 특히 미국은 땅이 워낙 넓어 장거리로 판매할 경우 제품값보다 배송비가 오히려 더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부분 미국 소비자들은 그냥 동네 가구점을 들러 그곳에서 판매하는 값 비싼 매트리스 중 하나를 고를 수밖에 없었던 거죠.
지누스의 ‘매트리스 인 어 박스’는 이랬던 미국 매트리스 시장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우선 매트리스를 납작하게 압축해 박스에 담아서 물류비를 획기적으로 줄였죠. 과거 차량 한 대로 매트리스를 5개 정도 옮겼다면 이제는 한꺼번에 50개를 옮길 수 있게 된 겁니다. 또 ‘매트리스 인 어 박스’는 성인 남성 한 명이 너끈히 들 수 있는 크기와 무게라 택배 배송도 가능합니다. 돌돌 말린 매트리스 팩을 원하는 자리로 가져가 뜯기만 하면 저절로 설치가 되니 회사가 별도의 설치팀을 고용할 필요도 없었고, 인건비 역시 절감할 수 있었죠.
하지만 가격만 저렴하고 품질이 나빴다면 이렇게 사랑받지는 못했을 겁니다. 지누스는 어느 날 갑자기 뚝딱 만들어진 기업이 아니라 한때 텐트 하나로 북미 시장 점유율을 65%까지 차지했던 캠핑용품 제조기업 ‘진웅’을 전신으로 하고 있습니다. 알다시피 캠핑용품은 기본적으로 튼튼해야 하는 데다 부피가 작고 가벼운 제품일수록 인기가 높죠. 진웅이 세계 텐트시장을 석권하며 쌓아왔던 여러 기술 노하우가 매트리스에서 빛을 본 겁니다.
또 지누스는 소비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제품력도 꾸준히 개선해왔습니다. 별도의 리뷰팀을 운영하며 소비자가 지적한 단점, 혹은 보완하면 좋은 부분 등을 분석·반영해 제품을 계속 업그레이드했죠. 지누스 제품에 대한 아마존 리뷰는 무려 57만 건에 이르는데 지누스는 이 모든 리뷰에 꼼꼼하게 피드백을 하며 소비자들로부터 더 좋은 평가를 받아내는데 성공하기도 합니다.
지누스의 성공에는 분명 행운도 있었을 겁니다. 기존 침대산업에 대한 불만이 커지던 시기, 때마침 등장했던 거죠. 앞서 말했듯 미국에서 침대는 크기와 무게 탓에 지역 기반 판매가 주를 이뤘는데, 2014년부터 이에 반발한 스타트업 기업들이 다수 등장했습니다. ‘터프트앤니들(Tuft&Needle)’, ‘캐스퍼(Casper)’, ‘리사(Leesa)’ 등 스타트업이 지누스와 비슷한 박스 포장 매트리스를 선보이며 온라인 매트리스 시장을 열어젖힌 거죠. 지누스는 2006년 이미 기술 개발에 성공했기에 이들과 더불어 재빠르게 온라인 시장을 선점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미국 동·서부에 10만㎡가 넘는 대형 물류창고를 직접 운영하며 2일 이내 배송을 완료하는 등 배송 부문에서도 우위를 점했죠. 이런 점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미국 온라인 시장 점유율 1위로 우뚝 선 겁니다.
여러 성공 경험을 쌓은 지누스는 아직 온라인 판매가 활발하지 않은 소파, 테이블, 협탁 등 다른 가구 분야에도 진출, 종합 온라인 가구회사로 우뚝 서겠다는 야심을 품고 있다고 합니다. 볼트·너트 조립 없이도 설치할 수 있는 ‘침대 프레임 In 박스’는 이미 출시가 돼서 인기를 끌고 있다고도 하죠. 미국·캐나다에서 성공을 바탕으로 호주, 일본, 멕시코 등 글로벌 시장으로 활발히 진출하겠다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고 하네요. 조만간 소파도, 테이블도 박스에 담겨 우리 손에 전해지는 날이 머지않은 것 같은데, 지누스의 성공 좀 더 지켜봐도 좋겠죠?
/글=김경미기자 kmkim@sedaily.com
/영상=정가람·정수현기자 garamj@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