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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충만한 삶, 존엄한 죽음]죽음이란...자유로운 영혼이 되는 과정일거야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지음, 갈매나무 펴냄




아홉 살 제피는 6년을 백혈병과 함께 보냈다. 마지막으로 입원했을 때는 제대로 서 있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제피는 추가 항암치료를 단호하게 거절했다. 대신 집으로 돌아와 자전거를 꺼내달라고 했다. 제피를 만난 ‘죽음학’의 대가인 스위스 출신 정신과 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와 제피의 가족들의 걱정과 만류도 제피를 막지 못했다. 아버지가 사준 멋진 자전거를 타고 동네 한 바퀴를 도는 것은 제피가 병원에 있는 오랜 기간 꿈꿔온 일이었기 때문이다. 힘겹게 동네를 돌고 돌아온 제피의 표정은 자신감과 환희로 가득 차 있었다. 2주 뒤 제피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가족에게는 오랜 애도 기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제피가 자신의 이야기를 아름답게 마무리 짓고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퀴블러 로스는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20세기 100대 사상가로 2004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죽음에 대한 연구를 멈추지 않았다. 그는 임종을 앞둔 수많은 사람들과 동행하며 끊임없이 죽음에 대해 고민했고, 죽음과 삶에 대한 의미를 강연과 세미나 등을 통해 전 세계에 전했다. 국내에서도 2006년에 출간된 ‘인생 수업’, ‘상실 수업’ 등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큰 사랑을 받았다.


신간 ‘충만한 삶, 존엄한 죽음’은 퀴블러 로스의 뛰어난 통찰이 담긴 네 편의 생전 강연을 선별해 담아낸 강연집이다. 제피의 이야기처럼 죽음을 앞둔 이들의 울림을 주는 사연들도 담겨있다. 옮긴이인 장혜경과 출판사 대표가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퀴블러 로스의 책을 찾아보자고 의기투합하면서 퀴블러 로스의 생생한 육성을 느낄 수 있는 강연집이 한국에 찾아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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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죽음은 끝이 아니라 육체라는 고치를 벗고 나비처럼 자유로운 영혼이 되는 과정”이라는 저자의 죽음관이다. 우리의 몸은 고치처럼 진정한 자아가 잠시 머무는 집일 뿐이며, 그 고치가 돌이킬 수 없이 훼손될 때 죽지 않는 자아가 물리적 껍질에서 해방된다는 것이다.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라고만 생각하면 공포감과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진다는 두려움에 짓눌려 남은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죽음을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죽음을 준비하는 삶의 방식이 완전히 바뀔 수 있다.

저자는 어렵고 복잡한 이론을 제시하기보다 따뜻하고 사려깊은 언어로 죽음과 삶에 대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죽음을 앞둔 환자들, 특히 어린아이들이 보여주는 놀라운 통찰과 감동적인 사연을 마주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눈가가 촉촉해진다. 1만4,000원.


김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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