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정여울의 언어정담] 마음에 여백을 남겨둔다는 것

작가

상황이 어려워도 서로 더 배려하는

마음의 여백 가꾸면 환한 등불 켜져

걱정·스트레스로 자신 괴롭히지 말고

마음 보살필 수 있는 노하우 개발을

정여울 작가정여울 작가



숲속의 나무들은 끝없이 가지를 치며 한없이 위로만 자랄 것 같다가도 도중에 문득 성장을 멈추는 시기가 있다. 가지와 가지 사이에 간격을 남겨둬야 그 사이로 햇빛이 들어올 수 있기 때문에 가지들은 무한히 뻗어나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성장을 멈춰야 함을 깨닫는다. ‘나 하나의 나무’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햇빛을 골고루 받기 위해서는 끝도 없이 뻗어나가고 싶은 충동을 누르고 너와 나 사이의 여백을 남겨둬야 한다. 나뭇가지들은 마치 다자간 협상이라도 하듯 지혜롭게 서로의 목소리를 들어주며 너와 내가 가장 많은 햇빛을 사이좋게 나눠 가질 최상의 간격을 조정한다. 우리 인간들도 나무들의 그 아름다운 지혜, 어떤 순간에도 존재의 여백을 남겨두는 슬기로움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뉴스로 스트레스를 받고 마음의 갈피를 못 잡을 때마다 나는 머릿속에 숲속의 나무들을 생각했다. 서로에게 햇빛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주기 위해 조금씩 ‘나의 자리’를 비켜주는 나무의 슬기로움이 내 마음에 여백을 만들어줬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보다 더 아프고 힘든 사람들을 돕기 위해 남몰래 기부와 선행을 하는 사람들, 오직 아픈 환자들을 돕기 위해 주변의 만류도 뿌리치고 환자밀집지역으로 떠나는 의료진들을 보면서 잔뜩 움츠려 있던 내 마음에 비로소 아름다운 성찰의 여백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열심히 준비했던 모든 강연이 취소되고, 오랫동안 집필해 온 책의 출간도 미뤄져 마음이 울적했지만, 그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용기를 잃지 않고 서로를 도와야 한다는 사실, ‘삶이라는 햇빛’을 모두가 함께 나누기 위해 서로를 조금이라도 더 배려하는 마음의 여백을 가꿔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마음에 환한 등불이 켜지는 느낌이었다. 끝없이 위로 자라는 성장에만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서로 도울 수 있기에 비로소 아름다워지는 삶의 햇빛이 우리 마음에 스며들 수 있도록 마음의 여백을 만들어야 했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인생은 번개처럼 지나가지만 아직 시간은 충분하다고. 아직 사랑할 시간, 아직 서로를 돌볼 시간, 아직 삶이 아름답고 소중한 것임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을 오롯이 느낄 수만 있다면, 우리는 아직 괜찮은 것이다. 너무 많은 걱정과 스트레스로 자신을 괴롭히기보다 상황이 어려워도 우리 자신의 마음을 잘 보살필 수 있는 저마다의 작은 노하우를 개발했으면 좋겠다. 나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처럼 숲속을 한없이 산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에 ‘마음속에서 아름다운 꽃과 나무들’을 그려볼 수 있는 책과 영화를 찾아보고 있다. 최근에는 소로 못지않게 꽃과 나무와 야생의 삶을 사랑했던 타샤 튜더의 책과 영화를 보며 커다란 위로를 얻었다. ‘타샤의 정원’을 읽다 보면 마치 버몬트의 30만평 대지에서 한평생 꽃과 나무를 가꾸며 살아간 튜더의 정원 속을 산책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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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릴 때는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아도 되어서 좋아요. 혼자 있는 게 좋아요.” 이렇게 고백하는 튜더는 사실 완벽한 고독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항상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추구했다. 도시나 인파로부터 떨어져 있었을 뿐, 자연과는 항상 함께였다. 튜더는 56세에 버몬트의 30만평 대지를 사들여 30여년간 정원을 가꾸었고,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금까지도 숨 막히게 아름다운 타샤의 정원은 건재하다. 온종일 코로나19 관련 뉴스에 지쳐버린 사람들에게, 타샤의 정원에 흐드러진 작약과 라벤더의 향기를 마음의 보석상자에 넣어 보내드리고 싶다. 아무리 힘든 순간에도, 나에게 주어진 환경을 내 의지에 맞게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잃지 말자. 어떤 순간에도 대세나 유행에 따르지 않을 용기, 내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의 여백을 남겨두는 사람들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수많은 뉴스와 온갖 걱정으로 마음에 빈틈이 없을 때조차도, ‘나는 아프다’고 말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의 아픔을 생각할 자리, 그리고 내 마음에 아직 완전히 사그라들지 않은 사랑의 자리는 남겨둘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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