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여명]회색 코뿔소,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홍병문 국제부장

코로나19 확산으로 리더십 도마에

정부 위기 대응력엔 독설까지 흉흉

자만심에 취하면 현실 파악 힘들어

경고 외면땐 치명적인 대가 치를것

홍병문 국제부장홍병문 국제부장



중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주춤하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한숨을 돌리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국 지도부 밀집지인 베이징 중난하이 주변에서는 시진핑 리더십이 크게 훼손되는 지경까지 몰리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오죽하면 시 주석이 리커창 총리를 방패 삼아 코로나19 사태의 책임에서 벗어나려 한다는 얘기까지 나왔을까.

100년 가까운 중국 공산당 역사 속에서 산전수전 다 겪어 웬만한 위기 국면에는 흔들리지 않는다는 게 중국 공산당 지도부다. 톈안먼 시위와 홍콩 우산 혁명은 물론 지난해 절정에 달했던 미중 무역전쟁 때도 중국 지도부는 겉으로는 끄떡하지 않았다. 4~5년 전 중국 증시가 폭락했을 때와 외환시장이 요동쳤을 때는 해외 헤지펀드 투자자들을 중국 경제를 흔들려는 사악한 의도를 지닌 투기꾼으로 몰아세우며 위기를 넘겼다.

중국 내에서는 이후 위기론이 잦아들기는 했지만 국제사회에서는 중국의 여러 위험요인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예상하고 있지만 간과해버리는 위험요인인 ‘회색 코뿔소’와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예상치 못한 큰 사건을 뜻하는 ‘검은 백조(블랙스완)’ 등 낯선 용어들도 등장했다.


놀랍게도 이런 외부의 날 선 경고에 시진핑 지도부는 이전과 다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 2017년 말 시 주석과 중국 지도부는 가장 경계해야 할 3대 위기요인을 거론하며 블랙스완, 회색 코뿔소의 위험성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당국과 중국 국민들에게 비교적 진지하게 여러 위기의 현실화 가능성을 설명하며 빈틈없는 대비책을 주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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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활동하는 경제 전문가들은 외환위기를 겪었던 한국 등 아시아 각국과 중국을 비교하면서 서방 전문가들이 예견했던 형태의 중국 붕괴는 현실화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한다. 공산당의 공고한 지배체제가 무너지지 않을까 온통 위기관리에 정신을 쏟고 있는 중국 지도부가 안팎에서 쏟아지는 여러 위기론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외교가에서는 전 세계 뛰어난 석학들이 쏟아내는 중국 사회의 문제점과 대안을 중국 지도부가 잘 정리해 이 가운데 가장 효과적인 카드를 사용하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중국의 위기이론은 블랙스완에 가깝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그림자 금융, 부동산 거품, 기업 부채 등 중국의 대표적 위기요인에 중국 지도부는 이중 삼중의 대비책을 준비하며 예방주사를 놓고 있기 때문에 알려진 위기요인으로는 중국 질서가 쉽게 흔들리기 힘들다는 뜻이다. 뒤집어보면 중국을 비롯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 확산 사태가 블랙스완이 돼 중국 경제와 체제를 흔들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중국이 문화대혁명 이후 처음으로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를 연기하고 시 주석이 한동안 공식 석상에 뜸했던 것도 이런 내부의 긴장과 경계심을 반영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현상에 국내에서는 우리 정부의 리더십과 위기대응 능력이 도마 위에 올라 있다. 현 정부가 한국 국민이 아닌 중국과 시진핑을 위하는 정치를 하고 있다는 독설까지 나온다. 중국 지도부의 최근 수년간의 위기대응 모습과 비교했을 때 우리 정부의 움직임은 실제로 미묘한 대비감을 느끼게 한다.

자신감이 아닌 자만심에 취해 있을 때 회색 코뿔소와 검은 백조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눈앞에서 시커먼 고릴라가 위협해도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있다면 인간은 그 고릴라를 인식할 수 없다는 사회심리학자들의 따끔한 경고에 정부 지도자들은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미 우리 사회 깊숙한 곳에 회색 코뿔소가 활보하고 블랙스완이 날갯짓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애써 그것을 외면하면 치러야 할 대가가 치명적일 수 있다. hbm@sedaily.com

홍병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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