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작가 프레데릭 페테르스의 그래픽노블 ‘푸른 알약’(2001)은 에이즈에 걸린 여자를 사랑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는 그녀와 함께하는데 필요한 것은 혐오가 아닌 조심성이라는 것을 배워간다. 만화에는 감염의 공포를 이기는 법이 빼곡히 담겨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이 더 이상 남의 얘기일 수 없는 현실에서 조 평론가가 이 작품을 추천하는 이유다.
인간에게 기생하는 바이러스는 치명적일수록 자신의 유전자를 전달할 숙주를 잃어 금세 세가 꺾이곤 한다. 이와아키 히토시의 ‘기생수’(1990)는 인류를 위협하는 존재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만화다. 만화는 정체불명의 생물이 한 고등학생 안에 기생하기 시작하며 생존을 둔 둘의 ‘공존’을 다룬다. 조 평론가는 “인간에 대한 철학적 사유가 담긴 재미있는 이야기란 이런 것”이라며 작품을 소개했다. 작품은 일본 문화청이 주관하는 ‘일본 미디어 예술 100선’ 만화 부문에 선정되기도 했다.
집에만 있는 무료함을 달래 주는 재미와 함께 위로를 건네는 작품도 있다. 류기훈 글, 문정후 그림의 만화 ‘용비불패’(1996)는 돈이라면 눈이 뒤집히는 주인공 용비가 황금성으로 가는 열쇠인 기물 ‘금화경’을 손에 넣으며 벌어지는 스토리를 그린다. 서 칼럼니스트는 “한국 무협 만화의 양대산맥을 이루었던 작품 중 하나”라며 “출판만화 전성기를 장식한 보물 같은 만화”라고 추천의 이유를 밝혔다.
한송이 작가의 ‘김영자 부띠끄에 어서오세요’(2013)는 30대 유선과 대입을 준비하는 동생 진선이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작은 의상실을 꾸려가는 이야기를 그렸다. 자매는 손님들에게 하나밖에 없는 옷을 만들어주며 그들의 마음속 상처를 위로한다. 상처에 지나치게 매몰되지 않은 담백한 시선으로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결국 사람으로 치유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난 것을 계기로 가족의 의미를 돌아보기 좋은 작품도 있다. 평범한 며느리의 결혼 생활을 다룬 수신지 작가의 ‘며느라기’(2017)는 고부갈등 해소의 실마리를 파스텔톤의 부드러운 그림으로 찾아 나선다. 성 평론가는 “부드러워 보이지만, 안에 담겨있는 내용은 전혀 무디지 않은 작품”이라며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난 지금, 좋은 가족관계를 만들기 위한 하나의 처방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만화는 지난 2017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는 ‘오늘의 우리만화상’에 선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