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대란’이 일주일 넘게 계속되고 있지만 정부의 우왕좌왕 행정이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애초 공장 현장과 기존 계약조건 등 공급 측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턱대고 ‘충분한 공급을 하겠다’고 공언한 것이 근본적으로 화(禍)를 키웠다. 악화일로 민심에 당정청은 “마스크 생산량을 최대한 늘리겠다(이낙연 더불어민주당 공동 상임선대위원장)”는 식의 ‘립서비스’만 되풀이하고 있다.
4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지난 3일 오후 ‘마스크 시장 안정화를 위한 수급대책’을 이튿날 오전11시30분 정부서울청사에서 발표한다고 출입기자단에 공지했다. 현재 50%인 공적 공급 비율을 80%로 확대하고 마스크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생산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의 내용이 담길 예정이었다. 하지만 공지된 지 불과 1시간30분 만인 오후8시44분 “관계부처 간 추가 협의가 필요하다”며 돌연 연기 통보를 했다.
이는 마스크 대란에 따른 민심 악화로 정부의 조바심이 커지면서 내부 조율조차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책 발표 계획을 섣불리 외부에 알려 혼선을 키운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 내부적으로는 100% 수준까지 공적 공급 비율을 높이자는 의견과 (100%는) 과도하다는 의견이 맞섰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최종 단계에서 공적 공급 물량 비율을 어느 수준으로 할지를 놓고 진통이 있었고 이 때문에 대책 발표가 미뤄졌다”고 말했다. 정부는 5일에서야 1인당 구매 물량을 제한하는 내용 등을 담은 수급대책을 발표할 계획이다. 가격도 마스크 1장당 1,000~1,500원(공적 물량)선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수출 물량 비율을 10% 이내로 제한(지난달 26일 시행)하게 되면 업체가 감당해야 할 후폭풍을 두고도 뒤늦게 지원책 마련에 나섰다. 국내 생산업체가 기존에 맺은 수출 계약을 파기하고 국내로 돌려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수요처로부터 손해배상 청구 등 소송에 노출될 우려가 있다. 정부 관계자는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국가의 행정조치로 발생하는 계약 파기에 대해서는 손해배상을 물지 않아도 될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계약서상에 관련 내용이 명시돼 있을 때에 한해 적용되는 것으로 그렇지 않은 영세업체들은 줄소송을 당할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뒤늦게 식약처와 법무부 중심으로 전담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계약 파기에 따른 업체 불이익을 어떤 식으로 지원할 수 있을지 검토에 들어갔다.
한편 이날 ‘납세자의 날’ 정부포상 전수식을 마치고 기자들과 만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당초 알려진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 정보 시스템이 아닌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시스템을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홍 경제부총리는 이달 3일 대정부 질의에서 “공평한 분배를 위해 약국의 DUR을 통해 마스크를 살 수 있도록 시스템을 보완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DUR은 중복 투약 방지를 위한 시스템으로 병원·약국에서 사용하고 있어 우체국·농협 등 다른 공적 판매처는 활용이 어렵다. 하지만 심평원의 시스템(요양기관 업무포털)은 구입자의 개인정보를 통해 중복 구매 여부를 확인할 수 있고 다른 공적 판매처 적용도 어렵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세종=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