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관점]이 와중에 금통위원 과반교체…초유의 '1% 금리실험' 누가 떠안을까

■금통위에 쏠리는 시선…관전 포인트는

정책 연속성 고려 총재 이어 첫 연임 가능성 제기

총선 맞물려 '꽃보직' 노린 낙하산 폭탄도 배제못해

'靑 밀실인선' 고질적 관행 이번엔 청산될지도 관심

코로나19 사태의 경제적 충격이 일파만파로 확산하는 가운데 금통위원 4명이 다음달 20일 무더기로 임기가 만료돼 통화정책의 안정적 운용에 비상이 걸렸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마스크를 쓴 채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장에 입장하고 있다. 한은은 코로나19 확산의 여파로 금통위 개회 장면을 당분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사진 제공=한은




일 년에 딱 여덟 차례 우리 경제와 시장의 시선이 온통 쏠리는 곳이 있다. 한국은행 대회의실이다.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회의가 여기서 열린다. 금통위원 7명의 다수결로 오전10시쯤 결정·발표되는 기준금리는 하루 거래액 7조원 규모의 채권시장 흐름을 일순간 뒤바꿀 수 있다. 그보다 거래 규모가 큰 주식·외환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내 말을 듣지 않으면 그 대가를 치른다”는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경고에 익숙한 시장 참여자들은 금통위 의장인 한은 총재의 발언을 해석하느라 점심도 거른 채 귀를 쫑긋 세운다.

한은 금통위는 우리나라의 통화정책을 관장하는 최고 정책결정기구다. ‘7인의 현자(賢子)’라는 과도한 찬사가 따라붙는 금통위원 중 당연직인 한은 총재와 부총재를 제외하면 5명의 일반위원이 있다. 이들 5인은 기획재정부와 한은·금융위원회·은행연합회·대한상공회의소가 각각 후보를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 문제는 4월20일로 조동철· 이일형·고승범·신인석 위원 등 4명의 임기가 한꺼번에 만료된다는 점이다. 금통위 의결정족수에 해당하는 무더기 교체는 코로나19 사태의 경제적 충격이 일파만파인 상황에서 통화정책의 안정성과 일관성을 위협하는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문제의 뿌리는 2010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명박 정부는 상의에서 추천한 박봉흠 위원의 임기가 끝났는데도 뚜렷한 이유 없이 2년 동안 후임자를 뽑지 않았다. 장기 공석을 방치했던 청와대는 2012년 4월 3명의 다른 금통위원 임기 만료 시점에서야 한꺼번에 4명을 임명했다. 이 바람에 4년 뒤인 2016년에 이어 올 4월에도 같은 현상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올 8월에는 당연직 금통위원인 한은 부총재도 임기가 끝난다.

2016년 5월 정례회의에 앞서 담소하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고승범(왼쪽)·이일형(왼쪽 두번째)·신인석(오른쪽)·조동철(오른쪽 두번째) 등 위원 4명이 금통위에 합류한 후 첫 회의에 참석했다. 이들의 임기는 다음달 20일 만료된다. /서울경제DB


금통위 멤버의 일괄 물갈이는 단연 정책 리스크다. 갓 임명된 새내기 위원은 물가 안정과 성장 지속이라는 일견 상반된 통화정책 목표를 어떻게 실현할지 이해하기 벅차고 금통위 특유의 엄중한 분위기에 압도당하기 일쑤다. 대세를 추종하거나 임명권자의 눈치를 볼 우려도 있다. 통화정책 결정구조를 합의제로 한 취지를 온전하게 달성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그래서 시장에서는 이주열 한은 총재처럼 금통위원 연임 가능성을 조심스레 제기한다. 이 총재는 중앙은행 수장이 금통위 의사봉을 재무부 장관으로부터 넘겨받은 1998년 이후 첫 번째 연임 사례로 기록된다. 한은의 중립성과 통화정책의 연속성 확보가 연임 배경이 된다. 추천 몫의 금통위원 연임은 상임제 전환 이후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이와 관련해 이 총재의 신년 발언은 의미심장하다. 금통위원 무더기 교체에 따른 통화정책 안정성 훼손 우려에 대해 그는 “4명 중 몇 명이 교체될지 알 수 없다. 4명이 다 바뀌는 것을 전제해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답했다. 이 총재는 ‘연임 가능성이 있느냐’는 기자들의 추가 질문에 “대통령 인사권이다. 노코멘트하는 것이 맞다”고 수습했지만 이 총재의 의중이 담긴 답변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연임 여부를 예단하기는 이르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한은 추천 몫의 이일형 위원이 우선 거론된다. 시장 소통을 중시하는 이 총재의 신년 발언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이번 교체 대상 4명 가운데 한은과 금융위 추천 인사의 임기가 3년으로 단축돼 한은의 부담도 덜하다. 국회는 금통위원 대거 교체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한은과 금융위 추천 위원의 임기를 한차례에 걸쳐 3년으로 제한하는 내용의 한은법 개정안을 2018년 통과시켰다. 개정 한은법의 첫 적용이 4월 금통위 구성이어서 무더기 교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한은 스스로 끊어낸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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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청와대에서 열린 지역상공인 간담회에 참석한 손경식(왼쪽) 대한상의 회장. 손 회장은 그해 9월 국회의 한은 국정감사에서 무늬만 추천제인 금통위원 인선 관행을 사실 그대로 밝혀 파장을 낳았다. /연합뉴스


금통위를 둘러싼 두 번째 관전 포인트는 밀실 인선의 구태 청산 여부다. 한은법상 일반 금통위원 5명은 각 기관의 추천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돼 있지만 청와대가 낙점해 추천기관에 거꾸로 통보한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2011년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은 국회의 한은 국정감사에서 이런 관행을 폭로한 바 있다. 그는 ‘금통위원을 왜 추천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청와대가 언질을 주지 않아서”라고 솔직히(?) 답변해 밀실 관행을 새삼 도마 위에 올렸다. 재계의 한 인사는 “거침없는 박용만 상의 회장이 추천권을 원칙대로 행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차제에 유명무실한 추천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한은도 이에 동조하는 편이지만 구체적인 속내는 좀 다르다. 한은 내부에서는 특정 이해집단의 추천제가 온당하지 않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인선 시기가 4·15총선 일정과 맞물린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꽃보직’을 노린 낙하산 폭탄이 떨어질 공산을 배제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청와대는 종종 대선캠프 출신과 대통령 측근 등을 예우 차원에서 내려 꽂았다. 때론 힘깨나 쓰는 경제부처의 인사적체 해소 차원에서, 혹은 전직 관료의 재취업 통로로 활용되기도 했다. 눈독 들일 만한 이유는 다 있다. 차관급 자리지만 웬만한 장관보다 낫다. 연봉이 3억원을 넘어 임명권자인 대통령보다 많다. 개인 집무실과 비서를 두고 차량 지원도 받는다. 4년 임기가 보장되고 국회 인사청문회 대상도 아니다. 그래서 ‘신이 숨겨놓은 자리’라는 세평도 나온다. 오죽하면 금통위원 인사 시즌에는 남대문을 돌아 광화문까지 줄을 선다는 우스개가 나왔을까. 정책 실기론이 들끓어도 한은 총재가 독박을 쓰지 위원 개개인에게 쏟아지지는 않는다. 상임제를 유지해야 하느냐는 뒷말이 나오는 연유는 여기에 있다.

네 번째는 초유의 금리실험 여부다. 한은 금통위는 기준금리가 1.25%로 사상 최저치임에도 금리 인하 압박을 받고 있다. 앞서 지난주 미 연준은 금리를 0.5%포인트 기습 인하했고, 우리 정부는 11조원이 넘는 추가경정예산안을 내놓았다. 시장에서는 이달 중 임시회의 또는 다음달 7일 정례회의에서 금리를 내릴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 연준은 2일 임시 통화정책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전격 인하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기준금리 1.25%는 이미 2016년 6월부터 경험했지만 1% 금리는 전혀 가보지 않았던 미지의 영역이다. 유례없는 초저금리 실험의 부담을 한 달 뒤 떠날 금통위원들이 지게 될 건가, 아니면 신참이 떠안게 될 건가. 시장은 전자에 베팅하는 분위기다. 3년 만기 국채금리는 이미 0%대를 터치했다. 어쩌면 기준금리 0%대라는 초유의 선택도 맞닥뜨릴 수 있을 것이다. 박승 전 한은 총재는 “이미 바닥 금리라 선택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금리 인상기에 과감히 올렸더라면 정책 여력을 확보했을 텐데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권구찬 선임기자 chans@sedaily.com

한국은행 금통위원회 구성 방식의 모델이 된 일본은행은 1997년 위원추천제를 없애고 국회동의제로 변경했다. /블룸버그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직전 창립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크게 세 차례 바뀌었다. 7명의 비상근위원제(당연직 제외)로 출발했다가 1962년 비상근 체제를 유지한 채 위원 수만 9명으로 늘어났다. 가장 큰 변화는 통화정책의 중립성을 보장한 1998년. 금통위 의장이 재무부 장관에서 한은 총재로 바뀌면서 비로소 한은은 ‘재무부 남대문출장소’라는 오명을 벗었다. 금통위원을 7명으로 줄이면서 상임제로 전환한 것도 이때다. 2004년부터 증권협회의 추천 몫이 없어지고 부총재가 당연직으로 참석하는 변화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껏 달라지지 않은 것은 금통위원 추천제다.

유명무실한 금통위원 추천제는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한은 창립에는 미국 중앙은행의 조력이 있었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과장급 실무자가 반년 동안 한국에 파견돼 한은법 제정에 관여했다. 그렇다면 미국식 제도인가. 아니다. 한은 60년사 집필에 참여한 차현진 한은 인재개발원 교수는 “패망한 일본 제도를 베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태평양 전쟁 이후 일본을 점령한 미국 맥아더 사령부는 1942년부터 전쟁 지원 역할을 수행했던 일본은행(BOJ)을 일종의 ‘전범기업’으로 간주하고 어떤 형태로든 군국주의 색채를 뺄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를 간파한 일본이 군정당국에 제시한 개혁카드가 통화정책 결정회의인 ‘정책위원회’ 설치와 위원의 민간추천제입니다. 정부 입김에서 자유롭고 민주적 통제가 필요했던 맥아더 사령부가 이를 수용했습니다.” 추천권은 은행권에 2명, 상공업과 농업 분야에 각각 1명씩 부여됐다.

하지만 정작 일본은 1997년 추천제를 폐지해버렸다. 주요 선진국의 사례가 없어서다. 이때 독립성 강화 차원에서 정부 측 위원 2명도 없앴다. BOJ 정책위원회(총재와 부총재 2명은 당연직)에 참여하는 심의위원 6명은 총재·부총재처럼 국회의 동의를 거쳐 내각이 임명한다. /권구찬 선임기자 chans@sedaily.com

권구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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