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금융그룹과 은행들이 앞다퉈 자본확충에 나서고 있다. 초저금리 시대에 수익악화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피해까지 덮치자 ‘글로벌 퍼펙트스톰’에 대비하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통상적으로 금융사의 자본확충은 재무건전성을 높이고 후일 대규모 인수합병(M&A)에 대비한 실탄 쌓기 측면이 강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유사시를 대비한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코로나19가 덮친 금융그룹에 자본확충 ‘비상벨’이 켜진 셈이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금융(105560)·하나금융·우리금융 3곳을 비롯해 신한·국민·하나·우리·기업은행(024110) 등 총 8개사가 올해 신종자본증권 및 후순위채 발행 등을 통해 확충한 자본 규모는 3조3,55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신한금융을 포함해 4곳의 금융그룹과 이들 은행이 확충한 자본규모가 8조1,073억원인 점을 고려하면 3개월 새 지난해 전체 규모의 41%가 충당됐다. 같은 속도라면 상반기 중 지난해 수준에 근접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전 금융권이 피해를 입은 기업과 소상공인에 대한 금융지원에 나선 점도 자금확충에 속도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 이날 신한은행은 코로나19 피해기업에 대한 지원을 위해 5,000만달러 규모의 외화 소셜본드를 발행했다. 소셜본드의 특성상 자본금에 포함되지 않지만 적극적인 행보라는 해석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그룹과 은행들의 자본확충 규모가 1·4분기 만에 3조원을 넘어선 것은 이례적”이라며 “코로나19 상황이 계속될 경우 금융지원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자본확충이 필요해졌다”고 설명했다. 기업은행의 경우도 지난 2일 일본 미쓰비시UFJ금융그룹(MUFG)은행, 미즈호은행과 6,000억원 규모의 커미티드라인 증액 연장 계약을 체결했다. 커미티드라인은 일종의 단기 마이너스 대출이다. 역시 코로나19 등 대내외 불확실성 확대에 대응하기 위한 한도 증액이었다.
물론 금융사마다 코로나19와 별개로 저금리·저성장 상황에서 재무건전성을 높이고, 비은행 금융사 M&A를 위해 자본확충이 불가피한 면도 있다.대표적으로 우리금융과 우리은행은 지주사로 전환한 지난해부터 M&A 실탄 확보를 위해 과감한 자본확충에 나섰다. 지난해 우리금융과 우리은행은 각각 1조9,500억원, 9,500억원의 자본을 확대했다. 2월에도 우리금융은 4,000억원의 신종자본증권 발행에 성공했고, 6일에는 우리은행이 3,000억원의 조건부자본증권(후순위채)을 발행했다. 그 결과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은 지난해 6월 말 11.1%에서 꾸준히 상승해 15.59%까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올들어서는 하나금융이 적극적이다. 하나금융과 하나은행은 1조원가량의 신종자본증권과 후순위채 발행을 준비 중이다. 하나금융은 “자본확충을 통해 그룹 기본자본비율 및 BIS비율을 제고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금융과 하나금융이 지난해부터 꾸준히 M&A 시장에서 주요 참여자로 나서는 모습도 자본확충에 따른 자신감이라는 분석이다. 우리금융은 동양자산운용과 ABL글로벌자산운용·국제부동산신탁을 차례로 인수했고, 하나금융은 지난달 더케이손보 인수를 확정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