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공포로 유럽이 전시상황에 버금가는 고강도 경계태세에 들어갔다. 코로나19 확진자가 1만명에 육박하는 이탈리아 정부는 ‘전국봉쇄’라는 초강력 확산방지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탈리아에서 전국에 이동제한명령이 내려진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정부가 코로나19의 사회·경제적 위험을 ‘준전시급’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9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이탈리아 정부는 전날 발표한 ‘북부봉쇄’ 행정명령을 이날 이탈리아 전역으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주세페 콘테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더 이상 ‘레드존(이동제한 지역)’은 없다”며 “이탈리아 전체가 보호를 받는 지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전처럼 특정 지역을 봉쇄하는 것이 아니라 이탈리아 전역의 이동을 제한하겠다는 의미다. 콘테 총리는 “국가비상사태에 처했다”며 “모든 국민은 집에 머물러달라”고 당부했다.
10일 0시부터 발효되는 이동제한명령에 따라 6,000만명에 달하는 이탈리아 국민은 업무·건강 등 불가피한 이유를 제외하곤 거주지역을 떠날 수 없다. 기차역이나 요금소, 도시를 잇는 도로나 공항에서는 시민들의 이동 목적을 묻는 경찰의 검문이 강화된다. 모든 국민은 이동이 필요할 경우 경찰 혹은 군에 자신의 이동계획을 밝혀야 하며 이를 어길 경우 벌금형 혹은 금고형에 처해진다. 이 같은 조치는 다음달 3일까지 시행된다. 이탈리아 정부는 교도소 내 가족면회를 금지하는 내용의 대책도 발표했는데 이에 반발한 재소자들이 전국 20여곳에서 폭동을 일으켰고 이 과정에서 7명이 사망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전국을 봉쇄한 국가는 이탈리아가 최초다. 지난달 21일 첫 내국인 감염자가 확인된 후 3주도 지나지 않아 전국에 이동제한명령을 내린 것은 그만큼 이탈리아 정부가 상황을 심각하게 인지하고 있다는 의미다. 콘테 총리는 “지금이 이탈리아의 가장 어두운 시기”라며 윈스터 처칠 전 영국 총리의 말을 인용해 코로나19와의 싸움을 전시에 비유했다. 실제로 이탈리아를 포함해 유럽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도심 테러사태나 석유위기 때도 이처럼 엄격한 제한을 두지 않았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이탈리아 보건당국에 따르면 9일 오후 기준 코로나19 전국 누적 확진자 수는 9,172명으로 전날 대비 1,797명이나 증가했다. 전 세계적으로 확진자가 중국(8만756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누적 사망자도 중국(3,136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463명이다. 누적 확진자 수 대비 누적 사망자 수 비율을 나타내는 치명률은 5.04%로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세계 평균 3.4%보다 크게 높다.
이탈리아 정부의 이 같은 조치는 코로나19가 급격히 확산하고 있는 주변 유럽 국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WSJ는 분석했다. 독일에서는 이날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 2명이 나왔다. 지난 1월 말 첫 확진자가 나온 뒤 이날 오전까지 1,000명 넘게 양성 판정을 받았으나 사망자가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스페인의 경우 누적 확진자가 1,500명을 기록한 가운데 확진자가 149명 발생한 바스크 지역에서는 주도인 비토리아 내 모든 학교에 대해 오는 23일까지 휴업조치를 결정했다. 프랑스에서는 코로나19 확진자가 1,412명으로 늘었으며 신규 확진자 중에는 프랑크 리스터 문화부 장관도 포함됐다.
유럽연합(EU)은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 직원 중 코로나19 확진자가 처음 나오며 비상이 걸렸다.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 본부를 둔 EU 집행위에는 3만2,000명가량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는 만큼 바이러스 확산 규모가 커질 수 있다. 앞서 이곳의 또 다른 EU 기구에서도 확진자가 나오며 불안감은 더 커지는 상황이다. 이에 EU 27개 회원국 정상들은 코로나19 공동대응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조만간 긴급 화상회의를 개최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번 회의는 10일 열릴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