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에 취약한 노인들이 집단생활을 하는 요양원에 대한 마스크 공급이 전면 중단되면서 요양보호사들이 방역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다. 정부의 공적 마스크 공급 확대 정책으로 개별 지방자치단체의 마스크 확보가 어려워지면서 요양보호사들에게 지급돼야 할 마스크 물량도 소진됐기 때문이다. 매일같이 노인들과 밀접접촉해야 하는 요양보호사들이 마스크를 구하지 못하게 되면서 ‘제2의 푸른요양원’ 같은 집단감염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12일 서울시와 요양시설 등에 따르면 서울시가 관리를 위탁한 요양시설에 종사하는 돌봄종사자들에게 제공되던 마스크의 공급이 이달 들어 끊긴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시는 지난달까지만 해도 재난관리기금을 활용해 시립요양원에 요양보호사와 노인을 포함한 입소정원 1인당 1주일에 2개가량의 마스크를 지급해왔다. 하지만 이달 들어 대부분의 시립요양원에서는 공급이 전면 중단된 상태다. 정부가 약국과 우체국 등 공적 판매처를 통한 마스크 공급 확대 정책을 시행한 후 국내 마스크 생산물량의 약 80%를 틀어쥐면서 지자체의 마스크 확보가 사실상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서울시의 마스크 공급이 끊기면서 요양보호사들은 일회용 마스크 한 장으로 며칠째 버티는 실정이다. 요양원에서 일하는 한 요양보호사는 “평소 외출용으로 쓰던 마스크까지 총동원해 사용하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며 “개인적으로 마스크를 구매하려 해도 쉽게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직업 특성상 마스크를 사기도 어려울뿐더러 퇴근 이후에 약국을 찾아가면 이미 동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반면 요양원에 입원해 생활하는 노인들의 경우 취약계층으로 분류돼 서울시 외에 다른 단체에서도 추가로 마스크를 제공받고 있다. 요양원으로 출퇴근하며 외부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옮길 가능성이 있는 요양보호사들은 정작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요양보호사들에게 마스크가 절실한 것은 알고 있지만 우리도 마스크를 구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앞서 고용노동부가 지난달 3일부터 미세먼지에 대비해 비축해놓은 마스크 152만장을 건설현장 근로자와 중국 우한 교민들이 머물렀던 아산·진천 인근 숙박시설 종사자들에 공급해왔지만 요양원 돌봄노동자들은 제외됐다. “고령의 어르신이 계신 사회복지시설 등에서 집단감염이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는 보건당국의 강조와는 달리 현장은 거꾸로 가는 모양새다. 민주노총 의료연대본부 관계자는 “요양보호사들이 요양원 밖에서 자신도 모르게 감염돼 들어올 경우 집단감염 사태로 번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경북 봉화 푸른요양원의 경우 전체 인원(117명)의 절반에 가까운 58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기 어려운 요양보호사들에게 오랜 시간 줄 서서 마스크를 사는 것은 아주 먼 나라 얘기”라며 “국가 차원에서 최소한의 마스크와 손소독제를 지급해주기를 간곡히 요청한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손장욱 고려대안암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요양원은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고령의 노인이 밀집해 있는 만큼 감염병에 취약하다”며 “어르신 못지않게 돌봄노동자들에 대한 예방도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