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 달간 35개 기업들이 사모시장을 찾아 총 1조1,214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같은 기간 공모사채를 발행한 곳은 23곳이었다. 특히 공모채 발행이 가능한 우량기업들의 사모채 도전이 두드러졌다.
사모사채는 대개 신용평가사로부터 신용등급을 부여받기 어려운 영세한 기업들이 찾는 시장이었다. 공모사채와 달리 신용등급 평가를 받아야 하는 의무가 없고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수요예측을 진행하거나 금융감독원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하는 등 세부적인 절차도 생략되기 때문이다.
‘AA’급인 신세계는 지난 20일 1,000억원어치 사모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했다. 의외의 행보였다. 신세계는 2018년까지만해도 공모 회사채 시장을 찾아 차환과 투자자금을 확보해왔다. 그러나 지난해 새 회계기준 적용에 따른 대규모 리스부채가 재무제표에 계상되면서 재무안정성 지표가 크게 떨어졌다. 숨고르기를 한 뒤 약 1년 8개월만에 시장성 자금 조달을 재개하면서 노크한 것은 사모채 시장이었다.
‘A’등급인 HDC현대산업개발도 3일 1,700억원 규모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자금을 확보했다. 다음달 공모시장에서 약 3,500억원 가량을 모집할 계획을 앞두고 비교적 리스크가 큰 장기물(10년물)을 사모시장에서 조달한 것이다. 올해 초 4,000억원 규모 공모채 모집에서 1조원이 넘는 뭉칫돈을 쓸어모은 호텔롯데(AA)도 지난달 15년 만기 사모채를 1,200억원어치 발행했다. 이밖에 단기신용등급이 최고수준인 ‘A1’인 롯데지주와 키움캐피탈(BBB+), 삼성중공업(BBB+), 두산인프라코어(BBB)도 사모채 시장을 찾아 자금을 확보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심화하면서 기업의 신용등급 변동성이 커진 게 주요 이유다. 가격 하락을 우려한 기관투자자들이 보수적 기조로 돌아섰고 이는 회사채에 대한 투자 수요 급감으로 이어졌다. 결국 공모로 투자자를 모집하기 부담스러운 기업들이 사모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사모채는 투자자를 미리 정해놓고 발행하기 때문에 만기구조와 금리, 상환 옵션 등 발행조건에 대해 사전에 충분히 조율할 수 있다.
IB업계의 한 관계자는 “증시가 크게 흔들리면서 리테일시장에서도 비교적 위험이 낮고 금리는 보장되는 회사채에 대해 관심이 높은 상황”이라며 “기업으로서는 발행조건에 대해 투자자와 충분히 사전 협의할 수 있어 모집 미달 등으로 체면을 구길 우려도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