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이어 아베 신조 일본 총리까지 2020도쿄올림픽의 연기 가능성을 처음으로 공식 언급하면서 올림픽 연기 논의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해 온 각국의 체육 단체는 일제히 환영의 뜻을 밝혔지만 논의 과정의 난항은 불가피해 보인다. 올림픽 개막을 실제로 연기하게 될 경우 결정을 내리기까지 IOC와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 각 종목 국제연맹, 각국 올림픽위원회(NOC)는 산더미 같은 난제를 함께 풀어가야만 한다.
IOC는 23일(한국시간) 긴급 집행위원회를 마친 뒤 “코로나19 확산에 오는 7월24일로 예정된 개막일을 미루는 방안을 포함해 도쿄올림픽 관련 세부 논의를 시작하기로 했다. 4주 안에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본다”고 발표했다. IOC는 또 “대회 취소는 의제에 올리지 않겠지만 규모를 축소하는 방안은 논의될 수 있다”고도 밝혔다. 아베 총리도 이날 “연기 판단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로 IOC와 한목소리를 냈다. 다만 여전히 ‘완전한 형태로 실시’라는 기조를 유지해 규모 축소를 언급한 IOC와는 미묘한 엇박자를 냈다. AP통신은 “현재 일본 내 코로나19 확산세를 볼 때 1년 연기가 거의 확실해 보인다”고 보도했다.
지난주까지도 정상 개최를 강조하던 IOC는 개최국 보호를 위해 선수의 안전을 볼모 삼는다는 각국 NOC와 선수들의 비난이 줄을 잇자 한발 물러서 대회 연기를 옵션에 포함했다. 캐나다올림픽위원회는 이날 1년 연기를 촉구하며 7월 개막을 강행할 경우 선수단을 파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호주도 자국 선수들에게 2021년 여름 개막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연기로 가닥이 잡힐 경우 크게 세 가지 안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3개월 연기와 1년 연기, 2년 뒤 개막이 그것이다. 미국 오렌지카운티레지스터에 따르면 아시아 몇몇 나라의 NOC 관계자들은 IOC에 1년 연기를 요청할 예정이다. 이 매체에 따르면 각 종목 국제연맹은 이미 지난주 말 IOC로부터 3개월 연기를 가정하고 예선 스케줄을 다시 짜보라는 긴급 메시지를 받았다.
석 달이 미뤄져 10월24일에 개막하면 일단 ‘하계올림픽’이라는 정체성이 모호해진다. 기온·수온 등 환경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수영 마라톤·요트·서핑·카누·비치발리볼 등 수상 종목이나 야외 종목을 정상적으로 진행하기 어려울 수 있다. 무엇보다 TV 중계 문제가 크다. 미국 내 올림픽 주관방송사인 NBC는 도쿄올림픽 관련 광고를 이미 90%나 유치했다. ‘가을올림픽’으로 바뀌면 광고 계약에 일대 혼란이 올 수밖에 없다. 그때쯤 시즌이 한창일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미국프로풋볼(NFL)·미국프로농구(NBA)·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등에 관심을 뺏길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가장 유력한 1년 연기도 올림픽 출전권 문제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IOC에 따르면 현재 전체 종목 예선의 47%가 완료됐다. 아직 절반 이상의 티켓이 주인을 찾지 못한 가운데 본선을 1년 미루면 예선 일정을 전면 재조정해야 한다. 현재 올림픽 티켓을 거의 확정한 선수들은 이 과정에서 피해를 입을 수 있다. 2021년 8월로 예정된 세계육상선수권과 겹치는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1년을 더 미뤄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과 같은 해에 개최하는 방안도 있지만 이 경우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월드컵이 곧바로 11월에 이어지는데다 영연방 72개국에서 5,000명의 선수가 참가하는 커먼웰스 게임(영연방경기대회)과 일정이 겹친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프레젠테이션을 지휘했던 테런스 번스 올림픽 마케팅 컨설턴트는 트위터에서 “2020년 도쿄, 2024년 파리, 2028년 로스앤젤레스(LA) 개최 계획을 2024년 도쿄, 2028년 파리, 2032년 LA로 바꾸는 방법도 있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대회를 준비해 온 국내 선수들도 불투명해진 일정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남자선수들의 경우 병역혜택 문제가 걸려 있다. 병역법에 따르면 올림픽 메달 수상자는 봉사활동 등으로 대체복무가 가능하기 때문에 일부 단체 종목에서는 선수 선발 때 병역 미필 선수를 어느 정도 배려하기도 한다. 나이 제한 때문에 1~2년 뒤면 병역혜택을 기대할 수 없어지는 선수들은 애가 타는 상황이다.
한편 도쿄올림픽이 연기되지 않고 정상 개최될 경우 경제적 손실이 더 클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닛케이아시안리뷰는 “올 7월에 열면 사람들은 코로나19 위험에 경기장을 찾지 않을 것이고 조직위는 입장권 환불에만 3억2,100만달러(약 4,100억원)의 경제적 손실을 입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골드만삭스도 “정상 개최 때는 관광객 유입이 크게 부진해 일본 정부가 13억달러(약 1조6,600억원)의 손해를 볼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