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확산에 따른 실물경기 둔화가 기업들의 신용 문제로 옮겨갈 수 있다는 우려가 다소 누그러지자 증시는 곧바로 반응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무제한 양적 완화 조처에 국내에서도 정부의 금융시장 안정화 대책이 발표되면서 얼어붙었던 투자심리가 녹았다. 다만 코로나19 확산세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예상보다 파격적이면서 전격적으로 발표된 대책에 대해 투자자들이 현재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하다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 ‘불안한 반등’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24일 코스피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8.6%(127.51포인트) 오른 1,609.97로 마감했다. 하루 상승률로는 지난 2008년 10월30일(11.95%) 이후 최고치다. 장중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서 나란히 매수 사이드카(프로그램 매매 호가 일시정지)가 발동될 정도로 치솟았다. 코스닥지수도 전날보다 8.26%(36.64포인트) 상승한 480.40으로 장을 마쳤다. 우리 정부의 금융시장안정화 대책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무제한 양적완화 발표가 한꺼번에 나오면서 국내 증시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2년 만에 최대폭으로 치솟았다. 원화와 채권가격도 일제히 상승하면서 오랜만에 ‘트리플 강세’가 펼쳐졌다. 이날 금융당국은 20조원 규모의 채권시장안정펀드와 10조7,000억원 규모의 증시안정펀드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대책을 발표했다.
실물경기 둔화가 개별 기업의 위기로 전이되는 상황을 사전에 막기 위해 대책을 발표하자 외국인 투자가들이 가장 극적으로 변했다. 이날 외국인들은 장 초반 순매도세를 보였다가 정부 대책이 발표된 후 순매수세로 돌아섰다. 장 막판 매도물량이 시장에 쏟아지면서 결국 814억원 순매도로 장을 마치기는 했지만 이전까지 매일 수천억원씩 쏟아내던 모습과는 분명 달랐다. 실제로 외국인 투자가들은 전날까지 13거래일 연속 순매도세를 이어가며 하루 평균 7,535억원어치의 주식을 팔아치웠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국 시장이 빠지기는 했지만 연준의 유동성 조치가 나온 후에 외국인 매매가 확 줄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며 “최근 일부 액티브펀드들도 매수세를 보였다”고 말했다. 아울러 ‘백기사’로 나선 연기금이 모처럼 매도세로 돌아선 개인 투자자들의 물량을 다 받아 안으면서 지수 상승을 이끌었다. 이날 연기금은 2,195억원어치의 주식을 사들였다.
외국인이 장 막판 매도세로 돌아서기는 했지만 국내 증시를 주도하던 반도체·정보기술(IT) 업종에 대해서는 순매수로 대응하면서 기대감을 높였다. 전기·전자업종 지수는 10.91% 상승했고 금융시장 안정화 대책의 영향으로 증권업종과 은행업종이 각각 11.25%, 8.86% 상승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금융시장 안정화 대책에 대해 대체로 증시에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증시가 급등한 것이 정부 대책 때문은 아니지만 적어도 최근 불거진 리스크에 대해 일정 부분 ‘방파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박소연 한국투자증권 투자전략부장은 “결론적으로 코로나19가 완전히 종식될 때까지 실물경기 둔화가 회사채 위험으로 전이되는 것을 선제적으로 차단했다는 것에 의미를 둘 수 있다”며 “경기회복에는 시간이 좀 더 걸리기는 하겠으나 금융시장 안정에는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도 “유동성 경색으로 디폴트가 나오느냐에 대한 고민이었는데 실행이 되면 도움이 될 것”이라며 “다만 미국은 회사채를 중앙은행이 사주겠다고 밝혔는데 우리는 그럴 수 없으니 이에 대한 대책도 강구하면 더 확실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다만 최근 각국 정부들이 파격적인 조처를 잇달아 내놓으면서 시장이 현재 상황이 파격 조처가 필요할 만큼 심각하다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형렬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파격적이고 공격적인 정책이 나온 것은 오히려 현재의 경기침체 위험이 이전의 금융위기 상황을 뛰어넘고 있다는 방증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재정을 통한 직접 지원 정책도 마련해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의견이다. 김 센터장은 “예상하지 못했던 디폴트를 막기 위한 간접 정책들은 나왔지만 소비 위축, 실업 확대 등의 충격을 완화할 부양정책의 보완도 필요하다”며 “침체 위험 속에서 가계와 기업에 대한 네거티브 정책을 완화하거나 유예하는 정책도 추가로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