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맨체스터 에티하드 스타디움의 스카이박스와 콘퍼런스룸으로 30일(현지시간) 낯선 짐들이 속속 들어섰다. 이곳을 홈구장으로 쓰는 잉글랜드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 맨체스터 시티 구단이 경기장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시설로 영국 보건당국에 공여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평소 구단 임원들이 경기를 즐기거나 회의를 하던 이 공간이 당분간은 의료진 교육장으로 쓰일 예정이다.
관중의 함성이 사라진 세계 각지의 스타디움에서 연대와 극복의 희망가가 들리고 있다. EPL 경기가 최소 4월까지 중단된 가운데 지난 시즌 우승팀 맨시티뿐 아니라 왓퍼드도 홈구장 비커리지 로드를 의료진에 내줬다. 스콧 덕스버리 왓퍼드 회장은 “축구는 잠시 잊고 보건당국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할 때”라며 ‘재난 극복의 팀플레이’를 강조했다.
스페인프로축구 프리메라리가 레알 마드리드의 홈구장인 산티아고 베르나베우도 의료전략물자 공급본부로 변신한다. 73년간 명문 레알의 안방으로 사랑받아온 산티아고 베르나베우는 지난 1982년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결승, 2010년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등을 유치했던 굵직한 스포츠 역사의 현장이다. 이제 이곳에는 국난 극복에 동참한 자랑스러운 역사도 한 줄 새겨질 것이다.
미국프로농구(NBA) 시카고 불스와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시카고 블랙호크스의 홈구장인 유나이티드 센터는 경기만 열리지 않을 뿐 오히려 평소보다 더 분주한 분위기다. 이곳은 코로나19 비상사태에 대응할 음식·의료물품 등의 물류 허브로 쓰일 계획이다. 불과 한 달여 전 NBA 올스타전이 열린 곳이지만 지금은 당시의 흥분과 들뜬 공기가 지나간 자리를 소중한 일상을 되찾기 위한 헌신과 기도가 채우고 있다. 30일 유나이티드 센터 앞에서는 시민들이 차에 탄 채로 장갑·고글·손소독제 등 개인 보호물품을 의료진과 환자들을 위해 기부하는 행사도 열렸다. NBA 새크라멘토 킹스의 연습 구장인 슬립 트레인 아레나는 360개 병상을 갖춘 임시 병원으로 탈바꿈할 예정이며 예일대 체육관도 의료병동 역할을 하고 있다. 웨일스 축구·럭비 대표팀이 쓰는 국립경기장인 프린시팰러티 스타디움에는 무려 2,000개의 병상이 들어섰다. 구장 운영요원들은 자원봉사자로 투입될 준비를 마쳤다.
브라질프로축구 세리에A는 소속 구단 중 절반 이상이 홈구장 공여에 동참했다. 브라질은 특히 인구밀집 도시인 상파울루와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병실 부족 사태가 심각하다. 이에 리우데자네이루의 ‘브라질 축구성지’ 마라카낭 스타디움이 의료센터로 변신했다. 마라카낭은 플라멩구 구단 등의 홈구장이자 2014년 월드컵 결승이 열렸던 곳이다. 로돌포 랜딤 플라멩구 회장은 “이 잔인한 시기에 우리 안방이 희망의 온실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상파울루의 파카엠부 스타디움과 코린티안스·산투스의 홈구장에도 속속 병상이 들어서고 있다. 전문가들은 브라질의 코로나19 확산세가 4~6월에 최고조에 이를 것이며 병원 등 치료 시스템은 4월 말이면 포화 상태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012런던올림픽 당시 태권도·펜싱·탁구 등이 열렸던 엑셀 센터 역시 당분간 운영권을 영국 보건당국에 넘겼다. 엑셀 센터와 에티하드 스타디움 모두 세계적인 거부 셰이크 만수르로 유명한 아부다비 자본이 소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