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경제동향

한은 'e머니혁명' 눈치만...디지털원화로 '미래 통화' 대비해야

[포스트 코로나...디지털통화 패권경쟁]

<중>CBDC시대 무엇이 바뀌나-국내 현주소는

美 연준 "발행 계획 없다" 말만 믿다 경쟁서 뒤처질 가능성

올 2월 디지털화폐 전담팀 만들었지만 여전히 '소극적' 비판

IT·한류 강점 살려 亞·太 역내경제서 원화 위상 키울 기회로




전 세계가 디지털 머니혁명에 ‘선도자(First Mover)’가 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한국의 중앙은행(Bank of Korea)은 특유의 수동적 조직문화에 눈치만 보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한국은행이 전 세계 중앙은행들의 맏형인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동향만 살피다 ‘미래 통화(Future Currency)’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고 경제 열등생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다. 한은이 지금이라도 ‘디지털원화’ 발행 가능성을 검토하면서, 세계적 경쟁력을 지닌 국내 정보기술(IT)과 한류 콘텐츠 산업 등을 연계해 원화의 위상을 끌어올릴 기회를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은의 ‘중앙은행 발행 디지털화폐(CBDC)’에 대한 입장은 “연구는 하지만 발행은 안 한다”로 요약된다. 이마저도 지난 2월 금융결제국 산하에 디지털화폐 연구 전담팀을 설립하면서 일보 전진한 것이다. 이주열 총재가 올 초 신년사에서 “CBDC와 관련해 연구 전담조직을 구성하고 전문인력을 보강하는 한편 국제기구 논의에 적극 참여할 것”이라고 밝힌 연장선이었다.


1~2년 전까지만 해도 CBDC에 대해 “필요성이 없다”고 선을 그어온 한은이 그렇다고 ‘e머니혁명’에 전향적으로 기조를 전환했다고 믿는 금융 및 IT 업계 관계자들은 거의 없다. 수동적인 한은맨들이 ‘디지털원화’ 발행 여부를 검토하기 위해 논란을 감수하고 법 개정을 추진하려 할 가능성이 극히 낮다는 것이다. 한은과 CBDC 연구를 함께했던 한 전문가는 “CBDC의 원활한 발행을 위해서는 한은법 개정이 필요할 수 있는데 정부·국회와 복잡한 논의를 하려는 의지가 한은 내에서는 전혀 읽히지 않았다”고 전했다.

중국 인민은행이 CBDC 발행을 지난해 공식 천명했는데도 한은이 “발행 계획이 없다”고 계속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전 세계 통화를 좌지우지하는 연준이 CBDC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으며 “발행하지 않는다”고 입장을 정리했기 때문이다. 연준의 영향력과 ‘달러 파워’에 압도된 한은은 미래 화폐에서도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빠른 추격자)’에 만족한다는 전략으로 연준의 눈치만 봐왔다.


최근 한은이 외환시장 위기 상황에서 연준과 600억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했듯 미국과 원만한 관계는 중요하지만 ‘통화정책의 미래’까지 의존하려는 경향은 논란이 적지 않다. 실제 연준은 CBDC 발행에 대해 지난달 전격적인 기조 변화 가능성을 시사해 한은의 처지가 궁색해진 측면이 있다. 레이얼 브레이너드 연준 이사는 미국 스탠퍼드대가 주관한 지급결제 콘퍼런스에서 “CBDC를 비롯해 다양한 디지털결제·디지털화폐 관련 안건들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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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CBDC 발행 계획이 없다”고 밝혀온 일본은행(BOJ)의 최근 행보가 심상치 않다. BOJ는 연준과 CBDC 발행에 보조를 맞추는 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CBDC에 관심이 큰 스웨덴·캐나다, 영국·스위스·유럽중앙은행(ECB)·국제결제은행(BIS)과 함께 CBDC 정보공유포럼을 창설해 다음달 관련 모임을 열기로 했다. 일각에서는 이에 대해 CBDC에 가장 적극적인 스웨덴과 기축통화를 보유한 중앙은행들이 모여 디지털통화를 언제든 선도할 수 있는 과점적 환경을 구축해 연준을 끌어들이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제기한다. 서울경제 펠로인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디지털화폐가 일반화하면 은행업 전반과 금융업 자체의 미래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면서 “한국이 디지털화폐 전쟁의 국제 흐름에서 뒤처지면 우리의 미래는 어두워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은 내부에서도 최근 2~3년의 연구 결과물을 토대로 금융회사들과 거액이 오고 가는 데 대해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분산원장 방식의 CBDC를 쓰는 것부터 우선 추진해볼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새로운 화폐를 발행하기 위해 한은이 짊어져야 할 부담을 경계하는 보수적 분위기에 묻혀 쉽사리 외부로 표출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금융업계와 IT 전문가들은 한은이 디지털통화 발행에 기존의 소극적 태도를 버리고, 적극적인 시그널을 시장에 보내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 됐다”고 강조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완전히 멈춰버린 원화의 국제화에 재시동을 걸면서 아시아·태평양 등 역내 경제권에서 원화의 위상을 높이는 데 ‘디지털원화’의 역할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권혁준 순천향대 IT금융학과 교수는 “디지털 강국인 한국은 CBDC가 발행됐을 때 빠른 보급과 자유로운 사용에 있어 어떤 나라보다 잠재력이 크고, 디지털화폐의 근간이 될 블록체인 기술의 활용도 역시 무궁무진하다”며 “한국경제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데 도약대가 될 디지털화폐에 대해 중앙은행의 적극적 역할 모색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손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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