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상 최고의 발명품은 무엇일까. 몇 해 전 특허청이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는 훈민정음이 그 영광을 차지했다. 전문가들이 선정한 25개의 후보작 가운데 훈민정음이 30%가 넘는 누리꾼의 선택을 받았으니 압도적이라고 할 만한 결과였다.
그런데 훈민정음이 지금 특허출원된다면 등록될 수 있을까. 특허발명이 ‘자연법칙’을 이용한 것이어야 한다는 대전제를 놓고 본다면 ‘사회적 약속’의 성격이 강한 새로운 자모 체계를 특허로 등록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견도 제법 있을 듯하다.
몇 년 전 특허업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마법천자문’ 사건이 이 사안에 대한 실마리를 준다. 당시 책의 내용에 관한 발명이 특허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 갑론을박이 벌어졌지만 글자의 시각적 배치를 유기적으로 구성해 한자 학습효과를 높이는 효과가 인정돼 특허대상이 되는 것으로 결론 내려졌다. 따라서 한글 자모 자체는 몰라도 그 설명서이자 발명노트인 ‘훈민정음해례본’은 과학적 원리를 통해 글자를 쉽게 학습할 수 있게 하는 효과가 있는 것이니 특허를 내 볼 만하다고 주장한다면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이렇듯 무엇이 특허를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논쟁은 특허제도가 탄생한 이래 계속되고 있지만 역사는 그 대상이 끊임없이 확대됨을 보여준다. 지난 1980년 차크라바티 사건에서 미 연방대법원이 특허대상을 언급하면서 인용한 “태양 아래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이라는 문구는 이런 경향을 가장 공격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유전자 변형으로 만들어진 박테리아에 대해 처음으로 특허를 인정한 이 판결은 생명체에 특허를 줄 수 있는지 논쟁을 불러왔지만, 이후 바이오산업의 폭발적인 성장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생명체에 특허가 부여되고 정보화 시대의 도래와 함께 컴퓨터 프로그램도 특허대상이 된 것처럼 우리가 지금 마주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새로운 분야가 특허제도 안에 편입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특허청은 인공지능·빅데이터·사물인터넷에 대한 심사기준을 산업계와 협력해서 마련했고 융복합 기술을 전담하는 심사조직도 세계 최초로 출범시켰다.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새로운 도전에 전문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다.
창조의 속도만큼 모방의 속도도 빨라지는 요즈음 자신의 지식재산을 어떻게 보호할지 몰라서 오랫동안 기울인 노력을 허사로 만드는 경우를 가끔 본다. 특허의 대상은 넓어지고 있다. 꼭 특허가 아니더라도 디자인·상표·저작권으로 창의적인 성과를 보호받는 방법이 있으며 이것이 해당이 안 된다면 아이디어나 영업비밀로 무형의 재산권을 지킬 수도 있다. 아무쪼록 ‘하늘 아래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이 지식재산으로 보호 가능하다는 생각으로 미리 준비하는 것이 현명한 자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