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중앙(CC)TV는 매일 30분씩 ‘해협양안’이라는 제목의 대만 관련 방송을 한다. 주로 대만 정부를 비난하고 중국 측 정책을 홍보하는 내용이다. 사회자와 패널의 전체 멘트가 한자로 자막 처리되는 것이 특이하다. ‘중국어(보통화)에 익숙하지 않은 대만인들이 자막으로라도 내용을 알기 바라는 생각에서’라고 한 소식통은 전했다. 최근 방송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지난 3월28일 리훙 앵커는 최근 미국에서 제정한 ‘대만 동맹 국제보호강화법(타이베이법)’을 설명하며 “코로나19가 미국에서 만연하는데 차이잉원(대만 총통)의 친미 정책은 위험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 코로나19의 유입으로 대만에서도 1월21일 첫 확진자가 나오자 대만 정부는 곧 중국발 입국을 제한하기 시작했고 2월7일부터는 전면 금지하고 있다. 대만과 중국의 인적·물적 교류가 적지 않음에도 그렇게 한 것이다. 다만 이는 그동안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내세웠던 차이잉원 총통의 신념이 반영됐다는 지적이 많다. 차이 총통은 재선 직후인 1월14일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미 독립된 하나의 국가로 스스로 ‘대만’이라고 부른다”며 별도의 독립 선언은 필요 없다고 언급한 바 있다.
중국과 대만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가운데 재선 부담을 해소한 차이 총통이 본격적으로 대만의 탈중국화, 즉 ‘독립’을 추진할 것이라는 지적이 강해지고 있다. 당초 초강경 독립론자에서 잠시 현실론자로 변했던 그가 오는 5월 2기 임기를 시작하면서 독자노선을 본격화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홍콩 민주화 시위에 이어 코로나19까지 대만인들의 반중 분위기가 높아지는 시점에서 이뤄진 중국과의 교류 차단이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
대만의 중국 교섭창구인 대만 대륙위원회(정식명칭은 중화민국대륙위원회)가 국립정치대 선거연구센터에 의뢰해 3월19~23일 20세 이상 성인 1,089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 중국이 대만 정부에 ‘비우호적’이라고 본 응답자가 76.6%로 조사됐다. 4명 중 3명 이상의 대만인이 중국의 태도에 불만을 갖고 있는 셈이다. 중국이 대만인들에게 ‘비우호적’이라고 보는 응답자도 61.5%에 달했다.
2015년 11월 친중 성향의 국민당 출신인 마잉주 당시 총통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이른바 ‘중국·대만 정상회담(양안회담)’을 진행한 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각각 51.2%와 46.9%에 그쳤던 것과 대비된다. 여론조사는 중국이 보는 대만에 대한 것이지만 사실상 대만인이 중국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대륙위원회 측은 “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상황에서 중국이 대만에 정치·경제·군사 등 모든 측면에서 위협을 가하면서 양안 간의 긴장을 높이고 있는 것이 이번 조사에 반영됐다”고 전했다.
대만인이 중국을 비우호적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양국 간 커지는 경제력 격차에 대한 우려와 이를 이용한 중국의 압력에 대한 반발, 그리고 대만 자체 출생자의 증가에 따른 중국인과의 혈연적 유대감 약화 등에서 살펴볼 수 있다.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특히 지난해 1월 시 주석의 “대만 통일을 위해서는 무력사용도 불사하겠다”는 발언을 전환점으로 보고 있다. 대만의 분리독립에 위기감을 느낀 중국 정부가 초강경책을 내놓았고 이것이 오히려 대만인의 반중 감정에 불을 붙였다는 것이다. 이후 홍콩 민주화 시위는 이런 추세를 강화했다. 중국의 이른바 ‘일국양제(한 나라 두 제도)’ 정책이 홍콩에서도 실패했는데 대만에서는 더 용납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앞서 올해 3월 대륙위원회 조사에서 대만인의 90.0%가 일국양제에 반대했다.
그나마 아슬하게 유지되던 중국과 대만의 연계가 깨지게 된 발단은 미중 무역전쟁에 이어 발생한 코로나19 사태다. 무역전쟁에서 미국의 대중 압박으로 중국 시장을 탈출하는 외국계 기업이 늘어났고 이들이 대만에 안착하면서 수십년 동안 이뤄졌던 중국과 대만의 산업 사슬이 느슨해질 가능성이 제기된 상태였다.
코로나19는 더 큰 충격을 가했다. 중국에서 후베이성 우한을 중심으로 코로나19가 창궐하고 대만에서도 유입된 확진자가 발생하자 대만 정부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중국과의 교류를 끊었다. 한참을 머뭇거린 한국·일본 등과는 사뭇 다른 태도였다.
이는 차이잉원 등 집권 민주진보당 인사들의 성향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일본처럼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는 하지만 대만 민진당에 중국과의 교류 중단은 ‘불감청 고소원(不敢請 固所願·감히 요구하지는 못하나 마음속으로 바라는 것)’이었다는 평가다. 그 덕분인지 3월30일 현재까지 대만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306명, 누적 사망자는 5명에 그쳤다. 대만의 ‘중국과 따로 살기’ 실험은 코로나19 팬데믹을 핑계로 한참 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외교 관계자는 “그동안 ‘하나의 중국’ 문제로 중국과 대립하는 가운데 ‘탈중국’을 지속해온 대만의 정책이 코로나19 위기에서 중국발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는 효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대만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중국을 거부하는 것은 실제 오랫동안 누적된 감정의 결과다. 17세기에 시작된 중국인, 특히 중국 남동부 푸젠인들의 이주로 대만은 본격적으로 개발됐는데 1949년 국공내전에서 패한 국민당 정부가 이전하면서 중국과 대만은 사실상 별개의 국가가 됐다. 대만도 국민당 독재 시절에는 대륙해방이라는 기치 아래 ‘중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했지만 이미 분단된 지 70여년이 지나면서 서로 소원해졌다. 대만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은 이미 중국을 외국으로 느낀다는 것이다. 또 대만 내에서는 이제 보통화보다는 대만어를 사용하는 빈도가 늘어나고 있다.
대만 독립에 대한 중국 당국의 강한 반대는 무역전쟁 등으로 사사건건 마찰을 빚고 있는 미국이 대만을 지지한다는 사실로 상쇄되고 있다. 미국 정부에 대만 원조 의무를 부과하는 ‘타이베이법’은 3월26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서명을 마치고 발효된 상태다. 이 법은 대만의 안전·번영에 타격을 가하는 국가에 대해 미국 정부가 해당 국가와의 관계 조정을 검토하고 국제기구에서 대만의 참여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존 미국의 대만관계법보다 한층 강화된 대만 지원 법안으로 평가된다.
미국 군함과 항공기들이 잇따라 대만 인근을 지나면서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해 반대하는 경고를 보내고 있는 것도 대만에 자신감을 주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중에서도 대만군은 3월24일 차이 총통이 직접 참관한 가운데 육해공 합동 ‘롄샹훈련’을 대규모로 진행하며 중국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자세를 분명히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차이 총통이 5월20일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면 독자노선은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차이 총통은 앞서 민진당 총통 선배인 천수이볜의 과격 노선과 이에 대한 중국·미국 양국의 반발을 교훈 삼아 애매모호한 대만의 현실을 인정하는 가운데 점진적으로 독립노선을 추구해왔다. 과거 천 전 총통은 대만 독립 선언을 위한 국민투표까지 주장하며 중국은 물론 현상유지를 원하는 미국에까지 불편을 안겼다. 즉 차이잉원의 역할은 국제사회나 대만 경제에 충격을 주지 않는 상황에서 분리독립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으로, 미중 무역전쟁과 홍콩 민주화,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과거에 없는 좋은 기반이 생긴 셈이다.
대만 정치의 한 축인 야당 국민당도 중국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 1월 총통선거의 참패를 교훈 삼아 기존의 친중 정책으로는 향후 정권창출의 기회가 없다는 부담이 국민당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올 3월 초 신임 국민당 주석으로 취임한 장치천은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대만, 즉 중화민국의 존재를 인정해야만 양측에 이익이 되는 교류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대만의 분리독립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는 사람도 적지 않다. 여전히 대만을 중국에 묶어두는 구심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다만 극단적인 군사력 사용을 배제한 상태에서의 평화통일을 위해서는 중국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과의 통일에 우호적인 국민당 지지자도 ‘민주화된 중국’과의 통일을 원하기 때문이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최근 기획에서 “대만은 중화권에서 마지막 남은 자유지역”이라며 “중국의 팽창하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견제해야 할 운명에 놓여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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