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반도체 업계가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수요 감축 우려로 보수적 투자 집행에 나선다. 시장조사기관 IDC가 최근 보고서에서 “올해 반도체 업계 매출이 전년 대비 최대 12% 이상 감소할 수 있다”고 전망하는 등 시장에서는 반도체 시장 위축에 대한 공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지난 3년간 총 40조원을 투자하는 등 시장 확대에 대비해 공격적 투자 기조를 유지해오던 SK하이닉스(000660)는 재무 사정 악화로 향후 투자 규모 축소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메모리 가격도 예상보다 회복이 더디다.
31일 D램 익스체인지에 따르면 3월 PC용 D램(DDR4 8Gb) 1개당 고정거래 가격은 전월 대비 2.0% 오른 2.94달러를 기록했다. 재택근무 등 노트북 수요가 일시적으로 증가하며 D램 가격의 소폭 반등을 이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지난 2018년 8.19달러와 비교하면 3분의1 수준이라 연초 반도체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은 차갑게 식고 있다.
더딘 반도체 가격 회복과 코로나로 인한 경기위축은 반도체 업체들의 투자여력 감소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SK하이닉스의 경우 지난해 현금 및 현금성 자산에서 차입금을 뺀 순현금이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SK하이닉스의 지난해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3조9,947억원인 반면 차입금은 10조5,235억원에 달해 순현금이 -6조5,287억원을 기록했다. 2017년 순현금이 4조3,833억원, 2018년 3조874억원이었다는 점에서 순현금 규모가 전년 대비 10조원가량 감소한 셈이다. 이는 지난해 D램 가격 하락 등 메모리반도체 시황 악화로 현금 및 현금성자산이 반토막 난데다 차입금은 2배가량 늘었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33% 하락한 26조9,907억원, 영업이익은 87% 감소한 2조7,127억원을 각각 기록하며 7년 만에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
SK하이닉스는 지난 2월에도 1조6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하는 등 공정 전환 및 공장 확대 등을 위해 차입금을 늘리고 있다. 투자 규모가 2017년 10조3,000억원을 기록한 것을 비롯해 2018년 17조원, 2019년 12조7,000억원을 기록하는 등 매출의 3분의1 이상을 투자해야 하는 반도체 산업 특성상 꾸준한 자금 확보가 필수다. SK하이닉스의 매출 대비 투자 비중은 2017년 34%에서 2018년 42%, 지난해 47%를 기록해 투자 부담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이다.
SK하이닉스는 올해 5세대(5G) 보급 확대와 서버 업체들의 클라우드 투자 확산으로 영업이익 ‘V자 반등’을 기대했으나 코로나로 ‘U자 반등’마저 버거운 상황이다. SK하이닉스 측은 “시장 변동성을 재확인한 만큼 보수적인 투자 집행 기조하에 재무안정성 회복에 초점을 맞춰 효율적 투자를 진행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동자금이 차입금의 6배 규모인 108조원에 달하는 삼성전자(005930)는 생산량 확대보다는 1x라인의 1y·1z라인 전환 및 DDR5 D램 등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 설비 도입에 집중할 계획이다.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은 18일 주주총회에서 “메모리 업계는 공정 전환 중심의 투자가 진행돼 전년 대비 시장이 안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히는 등 점유율보다는 이익 확대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4·4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도 “기본적으로는 공정전환과 재고활용 등을 통해 수요 증가에 대응할 예정이며 중장기 수요 대응을 위해 클린룸과 같은 인프라 투자는 지속적으로 진행하겠다”며 보수적 투자 계획을 내비친 바 있다.
삼성전자는 낸드플래시 생산공장인 중국 시안 2공장을 10일 가동한 데 이어 D램을 양산할 평택2공장 가동을 앞둔 만큼 기존 투자액을 바탕으로 탄력적인 수요 대응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3년간 2017년(27조3,456억원), 2018년(23조7,196억원), 2019년(22조5,649억원)을 합쳐 반도체 부문에만 73조원이 넘는 투자를 집행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