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을 통한 성 착취물 제작·유포에 가담한 가해자들의 신상을 공개하자는 움직임이 거센 가운데 일부에서는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을 빌미로 가학적 미션을 강요해 논란이 되고 있다. 특히 아무런 처벌권한도 없는 이들이 주축이 된 공간에서 반인륜적 행위가 자행되면서 또 다른 ‘n번방’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31일 현재 텔레그램 내 ‘주홍글씨’라는 이름의 채널에는 약 120명의 성 착취 가해자 신상이 공개돼 있다. 주홍글씨 운영진은 이들 모두 성 착취물을 소유한 범죄자라고 주장한다. 주홍글씨는 텔레그램 내 성 착취에 가담한 가해자들을 알리고 경찰이 검거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만들어진 채널이다. 주홍글씨가 공개한 신상정보는 가해자 실명과 주민등록번호는 물론 직업과 거주지, 과거 사진 등 다양하다. 현재 텔레그램 외에도 여러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검거 이후 성 착취 가해자들의 신상을 공개하는 다양한 채널들이 운영되고 있다.
해당 채널들이 가해자를 특정하는 방법 중 하나는 트위터를 통해 자신이 소유한 성 착취물을 다른 영상과 교환하자고 접근하는 것이다. 영상을 바꾸자며 찾아온 이들에게 텔레그램 링크를 보낸 뒤 해당 영상을 소유하고 있는지 인증을 요구했다. 이렇게 걸려든 이들의 전화번호를 알아내고 특정한 ‘미션’을 명령한 뒤 수행하지 않으면 신상을 공개하겠다고 협박했다.
문제는 이들이 요구하는 미션이 성 착취 범죄자들의 변태·가학적 행위와 닮아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A씨는 신상공개방 운영자들로부터 반성문을 써서 제출하라는 요구를 받고 써서 보냈지만 운영자들은 가족들을 대상으로 한 반인륜적 유사성행위 영상을 15분 안에 보내라고 요구했다. 요구가 끝도 없어질 것을 우려한 A씨가 방을 나왔지만 그의 신상은 주홍글씨에 낱낱이 공개됐다. 신상이 공개된 또 다른 이는 신체 은밀한 부위에 매직으로 이름을 쓰라는 미션을 받기도 했다.
미션을 이행하지 않으면 신상을 공개하겠다고 협박했지만 이행 여부와 무관하게 신상이 공개되기 일쑤다. 운영진은 미션을 충실히 이행한 이들의 ‘인증영상’들을 일명 ‘처벌방’이라고 불리는 채널에 따로 공유해 사실상 신상을 노출했다. 채널 참여자들은 영상들을 돌려보며 조롱의 댓글을 달았다. 운영자들은 공지에서 “(우리가) 정의롭다고 말한 적도 없다”며 “우리도 범죄자”라며 불법성을 자인하기도 했다.
가해자를 욕보이겠다는 의도와 달리 피해자의 개인정보까지 함께 누설되고 있다. 지난 25일 올라온 한 신상공개 게시물에는 피해여성의 실명, 학교, 속옷 사진 등이 그대로 노출됐다. 이외에도 가해자들의 여자친구·지인·배우자 등의 정보가 여과 없이 공개돼 2차 가해가 자행되고 있다. 또 실제 성 착취에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왜곡된 호기심에 접근한 이들의 신상까지도 무차별적으로 공개해 논란이 되고 있다.
한편 이날 경찰은 박사방에 참여했던 유료회원 3명이 자신들에 대한 수사망이 좁혀오자 자수했다고 밝혔다. 또 n번방 관련 내용을 추적해 언론에 알린 제보자가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는 신고가 접수돼 경찰이 출동하는 일도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