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20일 지진이 강타한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 해역에 하얀 선체에 커다란 빨간 십자가가 그려진 대형 병원선이 등장했다. 미국 해군의 의료함 ‘컴포트호’였다. 의료진 500여 명과 첨단 의료장비·병실을 구비한 컴포트호가 도착하자 절대 부족했던 현지 의료시설에 숨통이 트였다. 준비작업을 거쳐 도착 하루 후 활동을 시작하기 무섭게 환자들이 몰려들었다. 동시에 최대 50명까지 치료할 수 있는 진료실은 분주하게 돌아갔고 수술실도 풀 가동됐다.
컴포트호는 ‘바다 위 종합병원’이라는 별칭에 걸맞은 규모와 시설을 갖췄다. 15개 병동에 중환자실이 80개, 병상이 1,000개에 달한다. 수술실도 12개나 된다. 산소생산설비·의료연구소·영안실까지 있다. 병원 시설로만 보면 미국 내에서 네 손가락 안에 들 정도다. 대부분 해군 소속 현역 군인들로 이뤄진 의료진과 승조원 등 1,100여 명이 탑승한다. 7만 톤급에 크기는 축구장 4개, 높이는 건물 10층 규모다. 1976년 유조선으로 건조됐으나 미군 요청으로 1980년대 병원선으로 개조됐다.
평상시에는 정박지인 버지니아주 노퍽 해군기지를 중심으로 움직이며 전투 요원을 치료한다. 2000년대 들어서는 의료시설이 열악한 카리브해·중남미 국가들을 찾아 의료지원도 해왔다. 보통 한 나라에서 닷새에서 일주일 정도 정박하는데 항구에 도착하면 2개 의료팀이 배에서 내려 현지 의료기관과 병원을 방문해 환자들을 만난다. 배 안에 남은 의료진은 수술 준비를 하는 식으로 활동한다. 국내외 재난이 발생했을 때는 현지에 급파돼 작전을 수행한다.
아이티 대지진 외에도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물에 잠긴 뉴올리언스 등에서 활약했다. 이번에 컴포트호가 달려간 곳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하는 뉴욕이다. 노퍽 해군기지를 떠난 지 이틀 만인 30일 뉴욕항에 도착해 활동에 들어갔다. 민간병원들이 코로나19 감염자 관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일반 환자들을 치료하는 역할을 한다. 컴포트호가 코로나19 극복에 일조하고 배 이름(Comfort) 뜻 그대로 미국민들에게 ‘위안’과 ‘위로’를 줬으면 좋겠다. /임석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