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업황 악화에 재고만 느는 정유사 "양동이에라도 석유 보관해야 할 판"

■글로벌 원유 증산전쟁…국내기업도 직격탄

정제마진 20년만에 마이너스

공장 가동할수록 적자만 늘어

"협력사 돈도 못줘…지원 필요"




“현재 각 정유사 저장 탱크에 휘발유·경유가 꽉 차서 양동이라도 동원해야 할 정도입니다.”

국내의 한 정유사 관계자는 지금과 같은 수요 위축 상황에서는 제품 판매 수익보다 보관비용이 더 들어간다고 하소연했다. 공장 가동률을 절반 가까이 떨어뜨려야 그나마 보관 비용 부담을 덜 수 있지만 산유국들과의 장기 계약으로 원유가 계속 들어와 재고가 쌓일 수밖에 없다.


2일 정유화학 업계에 따르면 국내 업체들은 올해 조(兆) 단위의 영업손실을 우려하고 있다. 정유사의 핵심 지표인 정제마진이 20여년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선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수요 감소로 원유 가격이 제품인 휘발유 가격을 넘어서는 사상 초유의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3월 둘째주까지만 하더라도 휘발유 가격이 배럴당 42.6달러로 두바이유(33.6달러) 대비 9달러가량 가격이 높았으나 코로나19 확산으로 수요가 급감한 4월 첫째주 가격은 두바이유(22.6달러)가 휘발유(20.2달러) 대비 높아졌다. 원유 정제시 휘발유 등 고부가가치 제품을 더 많이 양산할 수 있는 고도화율 제고에 힘써왔던 국내 정유사들로서는 투자비용 회수는커녕 공장을 가동할수록 적자가 늘어나는 구조가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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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여가는 재고는 더 골칫거리다. 장기 계약 물량을 최대한 늦게 들여오기 위해 조율하고 있지만 ‘갑’인 산유국과의 협의는 쉽지 않다. 산유국들은 원유를 실어나를 초대형원유운반선(VLCC)을 사전에 대거 확보해놓아 국내 정유사의 운임 비용은 되레 증가하고 있다. 아예 항공유 등 일부 제품은 생산 후 두달이 넘어갈 경우 항공사들이 구매하지 않아 폐기처분해야 한다는 점에서 처리 부담까지 발생하고 있다. 정유사의 한 관계자는 “이달 초만 해도 물량 밀어내기로 재고 부담 등을 줄일 수 있었지만 현재는 그것마저도 불가능하다”며 “지난달과 달리 이달 정유제품 수출액은 급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각 업체는 시나리오별 컨틴전시 플랜을 마련해 놓았다는 입장이지만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뾰족한 수가 없다는 점에서 고민이 깊다. 코로나19 사태에서 빠르게 회복 중인 중국 업체들은 이 와중에 정유공장 가동률을 끌어올리고 있다. 중국 산둥 지역 정유사 가동률은 2월 말 37% 수준에서 지난달 말 57%를 기록하는 등 가뜩이나 수요 위축으로 힘든 정유 시장에 공급 과잉 우려까지 더하고 있다.

수익성 악화에 대비해 정유사들이 최근 수년간 석유화학 부문에 수조원의 투자를 늘렸지만 코로나19 이후 수요 감소는 감당할 수가 없다. 유가 하락으로 화학제품의 원재료인 나프타 가격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전체적인 수요 감소로 수출 물량 자체가 줄었다. 이에 대응해 SK종합화학은 SK울산콤플렉스(CLX) 내 나프타분해시설(NCC) 공정을 올해 말부터, 에틸렌프로필렌합성고무(EPDM) 공정은 올 2·4분기 안에 각각 중단할 계획이다. 롯데케미칼은 울산공장 내 고순도테레프탈산(PTA) 공정을 무기한 가동 중단했으며 파라자일렌(PX) 공정은 일부 가동률을 하향 조정했다. 화석연료를 수년 내에 상당 부분 대체할 것으로 여겨졌던 태양광 등의 재생에너지 산업 또한 급격한 원유 가격 하락으로 가격 경쟁력이 하락하면서 실적 악화가 예상된다.

업계에서는 항공업과 자동차 산업 위기가 정유와 화학 산업 위기로 전이되고 있다며 정부의 자금 지원 등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 회사채 시장마저 얼어붙은 상황에서 협력사들에 대금 지급하기도 갈수록 빠듯한 상황”이라며 “정유사들이 최근 몇 년간 배터리나 화학 등 신사업에 투자를 확대한 만큼 자금 여력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 자금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양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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