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EU 집행위원회는 “코로나19의 여파로 고객사와 경쟁업체·공급협력사 등 제3자로부터의 정보수집에 어려움이 있다”며 “모든 EU 위원회의 업무 또한 지난달 16일부터 취해진 원격근무 조치로 정보 및 데이터베이스에 대한 접근 및 정보교환이 제한됨에 따라 심사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EU는 이어 “빠진 정보가 제공되면 시계는 다시 움직이고 집행위의 결정 시한은 그에 맞춰 조정된다”고 덧붙였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지난해 7월 국내 공정거래위원회를 시작으로 6개국에서 본격적으로 기업결합심사를 받고 있으며 같은 해 10월 카자흐스탄에서 첫 승인이 났다. 이후 11월 EU 공정위원회에 심사신청서를 제출했다. 당초 EU 집행위는 올해 7월까지 심사 결과를 내놓을 예정이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대우조선해양과의 기업결합을 성사하려면 EU를 비롯해 일본·중국 등 5개국 공정거래당국의 심사를 넘어서야 한다. 결합이 해당 국가 소비자 및 관련 산업에 독과점에 따른 피해를 줄지에 대한 심사를 통과해야 승인을 받게 된다. 이 중 한 곳이라도 반대하면 그 시장은 포기해야 하기 때문에 결합이 어렵게 된다.
특히 경쟁법이 발달한 EU의 심사를 뚫는 것이 관건이다. EU 경쟁당국이 내놓을 결론이 뒤이을 경쟁국들의 심사 잣대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국내 조선업계 회생을 위해 기업결합을 서둘러야 하는 현대중공업그룹에 EU는 넘어야 할 큰 산이다. 유럽은 국내 조선업계의 고객사인 선주사 대부분이 밀집돼 있는 곳이다. 선주들은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등 국내 3개 업체가 치열하게 가격경쟁을 벌이면 싼값에 품질이 좋은 배를 사갈 수 있었다. 하지만 세계 1·2위 업체인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결합하면 선주사의 가격 협상력이 약해져 선박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 선주가 두 회사의 결합을 반기지 않는 이유다.
갈 길이 먼 가운데 일본의 견제가 계속되는 점도 불안요소다. 일본은 지난 1월 두 회사의 결합이 국제무역기구(WTO) 협정을 위반한 것이라며 제소하는 등 견제구를 계속 날리고 있다. 조선업계에서는 기업결합심사를 관련 법령에 따라 진행하기 때문에 일본이 인수를 불허하지는 못하겠지만 까다로운 조건을 내세우면서 결정을 지연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일본 조선업이 한국에 밀려나고 고전을 면치 못하면서 태클을 건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일본 조선업계는 액화천연가스(LNG)선 등 주력 선종 기술력이 뒤지면서 사업을 축소하거나 매각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외적인 어려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내부에서는 노조가 지난해 5월 시작된 임금협상 이후 파업과 소송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노조는 지난달 27일 해고자 복직, 특별위로금 지급 등 요구를 들어주면 물적분할(법인분할) 무효 소송을 취하하겠다고 밝혔다. 사측은 동료 폭행 혐의로 해고된 직원들 문제는 따로 태크스포스(TF)를 꾸려 논의하자는 입장이지만 노조는 수용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