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시그널]기업 '공포의 4월'...32곳 신용등급 강등 가능성

평가전 강등 기업 8곳 달해

채안펀드 지원 대상 좁아져




신용평가사들의 정기평가 시즌이 돌아오면서 기업들의 신용등급이 무더기로 강등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미 일부 기업들의 등급 하락을 기정사실화하면서 자기등급 대비 유통금리도 크게 상승했다. 기업들의 펀더멘털 우려로 당분간 회사채 시장에서 자금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자 일부 기업들은 단기자금이나 금융기관 차입으로 서둘러 조달구조를 바꾸고 있다.

5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LG디스플레이의 자기등급 대비 금리스프레드는 3년물 기준 54.3bp(1bp=0.01%포인트)까지 상승했다. 롯데렌탈(24.4bp), HDC현대산업개발(9.9bp)도 꾸준히 약세다. 해외 생산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큰 폭의 실적 악화가 불가피해진 현대차도 1.8bp 올랐다. 조만간 금리가 상승(가격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짙어지면서 시장 가격에 선제적으로 반영된 것이다.

이달 정기평가에서 신용도가 하락할 가능성이 있는 기업은 32곳에 이른다. A급인 LG디스플레이·HDC현대산업개발·한미약품 등은 물론 BBB등급인 현대로템·두산중공업·대한항공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투자 적격 단계 중 가장 밑단인 BBB- 등급을 보유한 위니아딤채는 한 단계만 더 하향 조정돼도 투기 등급으로 떨어져 시장에서 퇴출된다. 본격적인 평가 시즌이 도래하기도 전에 이미 신용등급이 강등된 기업도 이마트·OCI·현대로템을 비롯해 8곳이나 된다.


시장에서는 이달이 기업들에 어느 때보다도 ‘가혹한 봄’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충격으로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마저 불거졌다. 김상훈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코로나19, 유가 하락 등에 따른 기업들의 부진한 실적이 두드러지면서 예상보다 빠르게 기업들의 신용등급이 하향조정되고 있다”며 “경기 회복에도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같은 방향성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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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신용도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채안펀드의 지원 대상도 예상보다 좁아졌다. 정부가 회사채 시장 안정화를 위해 내놓은 채안펀드는 ‘AA’급 이상의 우량한 회사채만 매입한다. 투자한 기업의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포트폴리오에서 제외한다. ‘부정적’ 등급전망이 붙거나 ‘마이너스(-)’가 붙은 곳은 조만간 등급이 하락할 가능성이 큰 만큼 투자를 보수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 이달 2,000억원의 회사채 발행을 계획하고 있는 한화솔루션(AA-)은 일찌감치 채안펀드에 대한 기대감을 접고 산은의 회사채 신속인수제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

일부 기업들은 단기자금이나 금융기관 차입으로 서둘러 조달구조를 바꾸고 있다. 평가손실을 우려한 투자자들이 지갑을 닫으면서 회사채 시장의 경색이 길어질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기업의 신용등급이 하향조정되면 금리가 상승하면서 이미 발행된 회사채들의 가격이 떨어진다. 시가평가를 받는 자산운용사 등 기관에서는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지난해 회사채 시장에서 5,000억원어치를 발행한 SK종합화학은 올해부터 단기자금조달을 시작했다. 회사가 3월 한 달간 기업어음(CP) 발행으로 조달한 규모만 3,800억원이다. 1·4분기 한차례 등급이 강등된 KCC도 회사채 대신 1조1,050억원어치의 CP를 발행했다. 지난 한 해 발행 규모(2조2,100억원)의 절반을 1·4분기에 조달한 것이다. 현대로템도 창사 이래 처음으로 전환사채(CB)를 발행하기로 했다. 3년 만기로 총 2,400억원을 조달하고 이 중 일부로 단기사채를 상환하면서 빡빡한 현금흐름에 다소 숨통을 틔우겠다는 복안이다. 은행 대출을 통해 현금을 확보하려는 움직임도 발 빠르다. 지난달 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대기업 대출 규모는 전월 대비 8조1,000억원 가까이 늘어났다. 한국은행이 집계를 내기 시작한 2015년 9월 이후 최대 규모다.

일각에서는 금융감독원이 기업들의 신용등급 하락 트리거에 대한 전수조사를 진행하면서 신용평가사들에 “정책효과가 나타날 수 있도록 등급 조정을 완만히 하라”고 주문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그러나 한 증권사의 고위 임원은 “과거 금융위기 당시 그런 분위기가 있기는 했지만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기업들의 실적 악화가 숫자로 나타나고 있는데 제대로 평가하지 않으면 오히려 투자자들의 신뢰를 잃어 자본시장의 근간이 무너진다”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현금 유동성이 부족하고 재무지표가 안 좋은 한계기업들이 대거 구조조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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