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꽃들이 만개하는 봄. 그 절정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외부와의 단절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답답한 마음에 밖으로 뛰쳐나가 맘껏 봄꽃 구경이라도 하고 싶지만 주위의 시선에 그마저도 어려워졌다. 이럴 때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드라이브다. 바다를 배경으로 해안도로를 달리는 것만으로도 ‘코로나 블루’를 떨쳐버릴 수 있다. 쪽빛 바다와 활짝 핀 벚꽃이 장관인 삼척으로 ‘드라이브 스루’ 여행을 떠났다.
강원도 최남단인 삼척은 태백산맥과 동해가 한데 어우러져 사시사철 그림 같은 풍광을 선사한다. 그중에서도 요즘 계절에 가장 어울리는 곳이 있다면 바로 7번 국도다. 삼척에서도 덕산항부터 맹방해변을 거쳐 오븐해변까지 이어지는, 일명 ‘낭만가도’라 불리는 구간은 성급하게 차를 달리기보다는 천천히 여유를 갖고 봄기운을 만끽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서울에서 동해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근덕IC로 빠져나가면 바로 7번 국도와 합류한다. 여기서부터 바다와 가까운 해안도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7번 국도에 진입하자마자 이 푸르른 바다 빛깔과 함께 상춘객을 맞는 것이 끝도 안 보일 정도로 펼쳐지는 벚꽃터널이다. 해안도로를 따라 이어진 벚꽃길 2.5㎞ 구간은 연분홍 꽃잎이 눈앞을 가득 메우며 장관을 연출한다. 맹방초등학교부터 맹방유채밭까지 이어진 구간이 특히 아름답다. 발길이 뜸해져 한적해진 도로 중간중간에 잠시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거나 바닷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잎을 감상하는 관광객들도 제법 눈에 띈다.
벚꽃에 취해 몇 분을 달리다 보면 맹방해변이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유지태와 이영애가 백사장에 나란히 앉아 파도 소리를 녹음했던 바로 그곳. 맹방해변은 드넓은 백사장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북쪽으로는 한재밑부터 남쪽으로 하맹방까지 4㎞에 달하는 백사장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답답했던 가슴이 뚫리는 기분이다. 인근 초당동굴에서 흘러나온 마읍천의 담수와 바닷물이 합류하는 것도 바로 이곳이다. 마을 입구에 주차를 해도 되고 차로 해안가까지 들어갈 수도 있는데, 요즘에는 백사장을 걷는 사람보다 차를 타고 지나가며 바다를 감상하는 사람이 더 많다.
맹방해변 백사장을 따라 조성된 해송림을 산책하기도 좋다. 맹방해변 일대는 동해안 트레킹 코스 중 손에 꼽힐 정도로 매력적이다. 주로 여름철 햇빛을 피해 찾는 곳이지만 봄에는 호젓하게 걸으며 사색하기 좋다. 예년 같으면 상맹방해수욕장 진입로에 조성된 5.5㏊ 규모의 유채꽃밭까지 함께 둘러볼 수 있겠지만 얼마 전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지방자치단체에서 유채꽃밭을 모두 갈아엎으면서 올해는 사진으로밖에 볼 수 없게 됐다.
상맹방해수욕장에서 끝나는 해안도로를 빠져나와 다시 7번 국도를 따라 조금만 올라오면 삼척 시내다. 시내 동쪽 끝머리에 위치한 삼척항과 대게 거리는 식도락가들이 빼놓지 않고 들르는 곳이다. 동해안 특산물인 ‘대게’가 제철을 맞았지만 올해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겨 한적하다. 삼척항을 지나 좁고 굽이치는 길로 들어서면 펼쳐지는 새천년도로는 바다를 끼고 삼척항에서 출발해 ‘비치조각공원’과 ‘소망의탑’ 등을 지난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될 정도로 아름다움을 간직한 드라이브 코스다.
굽이굽이 난 도로를 따라 정상에 다다르면 소망의탑이 나온다. 건너편 주차장에 차를 대고 소망의탑에 올라서면 동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새천년 소망을 담아 2000년에 건립한 탑이 있는 이곳은 일출 명소로 유명하지만 드라이브 여행을 마무리하는 코스로 일몰 때 맞춰 가면 노을로 붉게 물든 아름다운 동해를 감상할 수 있다. 이곳에서 새천년도로를 따라 계속 가면 동해시다. 맹방에서 놓친 유채꽃을 꼭 봐야겠다면 망상해수욕장으로 가면 된다. 지난해 산불로 전소된 망상오토캠핑리조트 부지에 파종한 유채꽃이 절정이다. 입구에서 지자체 방역요원들로부터 발열검사를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어 안심하고 구경할 수 있다.
삼척에는 바다만 있는 게 아니다. 내륙도 볼거리로 가득하다. 관동 8경 중 제1루로 손꼽히는 죽서루(보물 제213호)가 삼척 시내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관동 8경 중 바다가 아닌 내륙에 있는 곳은 죽서루가 유일하다. 도심에서 뭐 볼 게 있나 싶지만 막상 올라가 보면 절벽 위 누각에서 오십천을 내려다보는 풍경이 멋스럽기만 하다. 송강 정철이 ‘관동별곡’에서 죽서루의 아름다움을 노래했고 겸재 정선이 관동지방 명소 11곳을 그려 모은 ‘관동명승첩’에도 죽서루가 들어가 있다.
시내를 조금 벗어나 자리한 영동선 도경리역(등록문화재 제298호)도 드라이브 코스로 잠시 들러가기 좋다. 지난 1970~1980년대까지만 해도 탄광지역인 삼척에서 석탄과 물자를 실어나르던 역할을 해왔지만 현재는 운행이 중단돼 무정차역으로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인 1939년 지어진 목조건축물로 영동선에 남아 있는 역사 중 가장 오래됐다. 도로 안쪽 깊숙이 자리하고 있어 관광지로도 찾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요즘 같은 때 한적하게 둘러보기에 좋다.
/삼척=최성욱기자 secret@sedaily.com 사진=오승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