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넘게 개점휴업 상태에 놓였던 케이뱅크가 6,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나선다. 자본금을 1조원대로 끌어올려 영업 정상화의 첫 단추를 끼우겠다는 포부다. 4월 총선 이후 열릴 임시국회에서 인터넷은행특례법이 개정될 마지막 가능성도 남아 있는 만큼 KT를 최대주주로 올리기 위한 사전준비 작업으로도 풀이된다.
7일 케이뱅크는 전날 이사회를 열고 5,949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추진하기로 결의했다고 밝혔다. 보통주 1억1,898만주를 신주 발행한 뒤 기존 주주의 지분율에 따라 배정하는 방식이다. 만약 일부 주주가 증자에 불참해 실권주가 발생할 경우 주요 주주사가 이를 나눠 인수하기로 했다.
주금 납입이 완료되면 현재 5,051억원인 케이뱅크의 자본금은 1조1,000억원으로 늘어나게 된다. 업계에서는 1조원을 정상적인 대출 영업을 위한 최소한의 자본금 규모로 보고 있다. 2호 인터넷은행인 카카오뱅크의 자본금은 1조8,000억원이다.
앞서 케이뱅크는 지난해 1월 KT를 최대주주로 올리고 5,91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추진했지만 KT가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를 받으면서 대주주 적격성 심사가 중단돼 모든 계획이 ‘올스톱’ 됐다. 고질적인 자본금 부족으로 지난해부터 신규 대출도 전면 중단한 상태다. 사실상 은행으로서의 기능을 못하게 되면서 지난해 1,008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도 10.88%로 떨어져 14~16%대인 다른 시중은행과 격차가 더 벌어졌다.
케이뱅크가 정한 주금 납입일은 6월18일이다. 두 달 넘게 여유를 둔 것은 4월 총선 이후 열릴 임시국회 일정을 고려한 결정이라는 게 안팎의 분석이다. 여야가 지난달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된 인터넷은행특례법 개정안을 총선 이후 임시국회에서 재심의해 처리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인터넷은행 대주주의 자격 요건을 완화하는 인터넷은행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현재 케이뱅크 지분율이 10%에 불과한 KT가 지분을 34%까지 늘려 최대주주에 오를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케이뱅크 주주단은 정보통신기술(ICT)기업인 KT가 최대주주로서 자본확충을 주도하는 방안을 기대해온 만큼 주금 납입 전에 법 개정이 이뤄지면 유상증자도 차질 없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시장 안팎에서는 주요 주주들이 적극적으로 증자에 참여할 경우 실권주가 40~50%가량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KT가 법상 보유할 수 있는 최대치인 34%까지 지분을 확보하고 우리은행·NH투자증권 등 주요 주주가 실권주 잔량을 인수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KT는 임시국회에서 법 개정이 무산되더라도 자회사를 통해 케이뱅크 지분을 34%까지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앞서 카카오뱅크도 카카오의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대주주 적격성 문제가 불거지자 한국투자증권의 자회사인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이 지분을 양도받은 사례가 있다. 우회 역할을 담당할 자회사로는 BC카드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이문환 전 BC카드 사장이 케이뱅크 새 행장으로 취임한 것도 이를 고려한 포석이라는 분석에 따라서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언제까지 국회만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는 만큼 법 개정 여부와 관계없이 KT의 지분율을 34%까지 늘리고 영업 정상화를 꾀하겠다는 계획”이라며 “KT가 책임감을 갖고 자본 확충을 주도하겠다는 리더십을 보여주면서 다른 주요 주주들의 참여를 이끌어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케이뱅크는 실탄만 마련되면 준비를 마친 비대면 아파트담보대출은 물론 편의점주 사업운영자금대출과 같은 신개념 상품도 신속히 선보이겠다는 각오다. 케이뱅크는 최근 현대자동차와 손잡고 현대차 구매 캐시백 프로모션을 개시하는 등 고객 확보에 시동을 켜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