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노(勞)·사(使)·민(民)·정(政)’ 상생형 일자리 모델인 ‘광주형 일자리’가 공중분해될 위기에 처했다. 지난 2일 노동계의 공식 불참을 선언하자 주주들마저 사업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광주형 일자리 추진 과정에서 반복된 노동계의 잇단 발목잡기에 투자사들도 인내심에 바닥을 드러낸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가뜩이나 경영환경이 불안한 상황에서 최악으로 치닫는 이 사업을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만약 투자사들이 이탈할 경우 국내 최초의 노·사·민·정 협력 모델로 광주 지역에 1,000여개의 일자리 창출이 예상됐던 광주형 일자리는 백지화될 것으로 보인다.
광주글로벌모터스는 8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현대차(005380), 산업은행 등 투자 주주 30여개사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임시주주총회에서 오는 29일까지 노동계가 입장을 바꾸지 않으면 주총을 소집해 사업진행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이날 주총에서는 노동계의 잇단 발목잡기에도 불구하고 광주형 일자리 성공을 위해 의사표현을 자제해왔던 주주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당초 예정됐던 시간을 넘겨 4시간여 동안 이어진 임시주총은 주주들의 성토장이 됐다. 주총에 참석한 주주들은 “불확실성이 너무 크니 사업을 철수하자”, “현재 건설 중인 공장 건설을 중단하자” 등 격앙된 의견들을 쏟아냈다. 원칙 없이 노동계에 흔들리는 광주시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일부 주주들은 “투자유치의 주체였던 광주시가 중심을 못 잡고 노동계에 끌려다니면서 적당히 봉합하려 해 오히려 사태를 키웠다”며 “광주시가 노동계와 ‘노사상생발전협정’에 없는 별도의 약속이나 이면 합의를 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했다.
광주형일자리 사업은 주 44시간 기준 전체 근로자 평균 초임 연봉 3,500만원, 35만대 생산시까지 상생협의회 결정사항 유효, 투명경영 및 상생경영 내용이 담긴 노사상생발전협정을 토대로 기업들의 투자를 유치해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8월 광주시와 현대차를 비롯한 투자자들 간 투자협약이 체결됐고, 9월 광주글로벌모터스(GGM)를 설립해 12월부터 생산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내년 상반기에는 1,000명 규모의 근로자를 채용하게 된다. 차 부품 등 연관 산업까지 포함하면 1만2,000여명의 고용창출 효과가 기대되는 사업이다.
문제는 노동계가 공장건설을 시작한 지 몇 개월도 지나지 않아 “광주형 일자리가 정치놀음으로 전락했다”며 투자협약에서의 약속을 뒤집으면서 발생했다. 노동계는 노사상생발전협정에 없는 노동이사제 도입, 현대차 추천 이사 경질, 임원급 임금을 노동자의 2배 이내에서 책정, 시민자문위원회 설치 등을 돌연 요구했다. 노동계는 이 같은 요구가 관철되지 않자 지난 2일 광주형 일자리 불참을 선언했다.
광주형 일자리에 투자한 주주사들은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해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불확실한 사업을 그대로 이어가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 주주사 관계자는 “실험에 가까운 광주형 일자리 사업에 투자를 결정한 것은 광주 노동계와 광주시가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라면서 “하지만 노동계의 대응으로 사업의 기본인 신뢰를 잃은 상황에서 계속 추진해야 할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한편 광주시는 9일 열리는 올해 첫 노사민정협의회에서 이날 열린 임시주총 결과를 안건으로 상정해 대응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총 25명으로 구성된 노사민정협의회에 노동계 대표 4명은 불참을 통보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