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금융가

진술서로만 상환유예...모럴해저드 키우나

[위기 개인차주 지원안 논란]

악의적 의도 품고 편승 땐

성실채무자에 부담 전가 우려

리스크 관리 취약 상호금융

유동성·건전성 타격 받을 듯

1015A14 8개 카드사 카드론 잔액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연체 위기에 놓인 개인차주에 대해 신용대출·카드론 등의 원금상환을 최대 1년 유예해주기로 했지만 개인의 소득감소를 증명할 객관적인 자료 없이 진술서만으로도 금융사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할 방침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이번 지원에 편승해 채무조정을 받으려는 일부 채무자의 모럴해저드가 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이미 자금조달이 힘들어진 카드·캐피털사 등 여신전문금융사와 리스크 관리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상호금융권은 유동성·건전성에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짙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8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4차 비상경제회의에서 코로나19 사태 이후 소득이 줄어 가계대출에 대한 상환이 어려워진 개인채무자의 신용대출과 보증부 정책서민금융대출의 원금상환을 6~12개월간 유예하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참여기관에는 은행·보험은 물론 여전사·저축은행·신협·농협·새마을금고 등 3,718개 금융기관이 모두 포함됐다. 금융위는 ‘올 2월 이후 무급휴직이나 일감 상실 등으로 월 소득이 감소한 개인채무자’를 지원 대상으로 명시했지만 ‘소득 감소’의 구체적인 요건은 함께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주 금융위가 금융사에 회람한 ‘코로나 피해 개인채무자 프리워크아웃 운영방안’에 따르면 소득 감소는 직장에서 발급한 근로소득증명원이나 휴직증명원, 실업급여수급 확인서 등 객관적인 자료로 확인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이게 어려울 경우에는 채무자가 작성·날인한 ‘소득 감소 진술서’로 증빙을 대체하도록 한 것으로 확인됐다. 객관적인 자료 없이 채무자가 ‘코로나19 때문에 소득이 줄었다’고 진술만 해도 지원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금융위는 “사후적으로 허위 진술 사실이 적발될 경우에는 혜택 취소 등 불이익을 적용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금융지원 실적을 매달 점검받아야 하는 금융사로서는 꼼꼼하게 허위 여부를 확인할 수단과 여유가 없다는 게 문제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코로나19 이전부터 갚을 의지나 능력을 보이지 않았던 사람까지 악의적인 의도를 품고 편승할 수 있다”며 “중소기업·자영업자는 대략적인 재무제표라도 있어 현금 흐름을 파악할 수 있지만 개인차주에 대해 진술서만으로 빚 상환을 미뤄주면 결국 성실 채무자들이 부담을 대신 지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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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금 100% 유예는 더 큰 폭탄을 돌리는 것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은행권을 중심으로 금융사들이 자체적으로 운영 중인 프리워크아웃제도의 경우 상환유예를 해주더라도 차주의 이자 부담을 줄이고 성실 상환 의지를 확인하기 위해 원금의 5%에 해당하는 소액이라도 우선 갚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무조건 상환유예만 하면 더 큰 폭탄을 나중에 미뤄 일시에 터지게 방치하는 일이 될 수 있다”며 “그래서 지원 대상자를 정교하게 선별하는 게 중요한데 이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수신 기능이 없는 여전사들은 이번 조치로 유동성 위기마저 우려하고 있다. 여전사의 경우 채권 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이를 활용해 대출·카드이용대금 선지급 등 영업을 하기 때문에 상환이 끊임없이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코로나19 피해 지원으로 자영업자의 카드대출과 카드대금 상환을 유예하고 있는데다 여전채 시장 위축으로 자금조달도 여의치 않은 상태다. 여기에 비중이 훨씬 높은 개인차주 카드론까지 최대 1년 상환이 미뤄지면 현금흐름이 막힐 수 있다는 위기감이 높다. 유예가 종료되는 시점에 전체 금융사가 한꺼번에 상환을 요청하면 연체가 폭증해 그 부실을 금융사가 다 떠안아야 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신성환 전 금융연구원장은 “원금상환을 유예해 생기는 손실은 금융사가 책임져야 하는데 가뜩이나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여전사에까지 상환유예를 확대하는 것은 무리가 있는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금융부처 전 관료는 “금융당국은 금융시장이 경색되지 않도록 해주는 게 역할”이라며 “복지의 영역을 금융으로 메우려고 하니 파열음이 생기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빈난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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