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정책·제도

[이슈분석] 'C스톰' 덮친 주택시장...10년 주기 '대하락' 재연되나




부동산 시장의 풍문 중 ‘10년 주기설’이 있다. 말 그대로 10년을 주기로 부동산 시장의 활황과 침체가 반복된다는 주장이다. 1997년 외환위기로 실물경기 침체가 극심해지자 부동산 시장도 가라앉았다. 그 여파로 한보를 비롯한 건영, 우방 등 건설사들이 무너지기도 했다. 이후 2008년에는 미국 모기지 대출 부실이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으로 이어지면서 전 세계가 금융위기로 신음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금융위기가 본격화된 2008년 9월부터 2013년 말까지 5년 여 간 서울 아파트값은 10.55%, 수도권은 11.06% 하락했다. 2017~2018년에 이르러 국내 부동산이 상승행진을 이어갈 때도 시장에서는 10년 주기설을 근거로 언제 집값이 꺾일지 모른다는 이야기가 오르내렸다. 예측 이론이라기 보다는 집값의 지난 패턴을 끼워 맞춘 결과론에 가깝지만, 최근 들어 시장은 또다시 10여 년만의 ‘대하락’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실물경기 침체가 부동산 시장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어서다.

<전세가율·수급상황 금융위기때보다 양호...실업률이 최대 변수


강남3구 둔화·노도강 상승세 등

외부쇼크 부동산시장 전이과정

“2008년 금융위기와 비슷” 지적

제로금리에 정부 부양책 강력

“투매 펼쳐지긴 어려워” 분석도

경기 부진 장기화 땐 실업 늘어

가계소득 급감...하방 요인 될 듯




# 서울 강남의 대표적인 재건축 단지인 개포동 개포주공1단지 전용 50.64㎡는 지난 3월 말 한 달 만에 전 고가에서 6억 6,000만 원 떨어진 19억 4,000만 원에 거래됐다. 하락 폭은 22.4%에 이른다. 금융위기로 인한 주택값 하락세가 정점으로 치닫던 2012년 3월. 개포주공 3단지 전용 36㎡는 5억 4,500만 원에 실거래됐다. 이는 이전 최고가 7억 4,500만 원보다 27%가 빠진 가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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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금융위기의 재현일까.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실물 경기침체가 부동산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시장의 관심은 결국 부동산 가격 하락이 일시적일지, 아니면 대 하락장의 초입에 들어서 있는 지다. 시장에서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하락의 패턴과 폭이 유사하다는 분석과 함께 금리상황이나 주택공급량, 학습효과 등 당시와는 다른 시장 조건이 많아 장기 침체를 전망하기에는 이르다는 의견이 혼재하고 있다.



◇ 2008년과 비슷하다는 주장 보니 = 먼저 코로나19 사태는 2008년 금융위기와 같이 외부쇼크에 따른 실물경기 침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임병철 부동산114 리서치팀 수석연구원은 “최근 코로나19 외부 쇼크가 부동산 시장으로 전달되는 과정은 2008년 금융위기가 본격화하기 직전과 닮은 모습”이라며 “한 예로 강남 3구의 집값이 둔화된 반면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이 상승했던 것이 대표적이다. 현재도 이와 비슷한 패턴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2007년 말부터 금융위기 발생 직전인 2008년 8월까지 부동산114의 데이터를 보면 서울 아파트값은 △노원(22.23%) △도봉(21.80%) △중랑(18.87%) △금천(12.48%) △강북(12.42%) 등이 크게 올랐지만 △송파(-4.26%) △강동(-4.09%) △강남(-2.16%) △서초(-16.1%)는 하락했다. 올해를 보자. 1·4분기 서울 아파트값은 노원(4.59%), 강북(4.25%), 성북(3.80%), 동대문(3.44%) 등 9억 원 이하 중저가 아파트가 몰린 지역이 가격 상승을 주도했다. 반면 송파(0.25%), 서초(0.42%), 강남(0.65%) 등 서울의 고가 아파트 밀집지역은 상승 폭이 더뎠다. 임 연구위원은 “코로나 19 여파로 인한 경기침체 장기화 우려로 매수심리 위축이 강남권을 넘어 서울과 경기 외곽지역으로 확대될 수 있다”며 “금융위기 당시에도 서울 노도강과 수도권 외곽지역이 리먼사태 이후 하락세로 돌아선 바 있다”고 설명했다.

반론도 만만찮다. 집값이 떨어지는 과정은 애초 경기에 예민한 지역과 시장부터 시작되기 마련일 뿐인데, 이를 금융위기와 같은 장기 침체의 신호로 보기는 무리라는 주장이다. 부동산 시장은 통상 외부 충격이 발생했을 때 상가 임대차 시장→재건축 재개발→일반 아파트→상가건물→토지 순으로 영향을 받는 게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 과거 하락기와 다른 점은 = 일단 전문가들은 과거 하락기와 비슷한 점이 있지만 다른 점이 더 많다고 말한다. 금리 및 주택 수급, 학습효과, 전세대비 매매가 비율 등이 금융위기 당시와는 다르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부분은 바로 금리다. 금융위기 직전이었던 지난 2008년 8월의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5.25%. 이후 2009년 2월까지 6차례에 걸쳐 인하한 끝에 최종적으로 2.00%가 됐다. 이에 반해 2020년 4월 현재 기준금리는 0.75%로 사상 첫 제로 금리다.

안명숙 우리은행 부동산투자지원센터 부장은 “대출 규제 영향으로 규제지역의 주택 소유자들은 대출을 많이 받지도 않은데다 주담대 금리 역시 당시보다 낮다”며 “코로나 시국이 길어지면 하방 압력이 커질 수 있지만 금리 영향으로 집값이 한동안은 지탱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낮은 금리로 인해 주택담보대출 연체율도 당시와는 차이가 난다. 한국주택금융공사 등에 따르면 2008년 한해 동안 주담대 연체율은 0.4~0.6% 사이를 오갔다. 하지만 올 1월 말 기준 연체율은 0.21%로 당시의 절반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아울러 낮은 금리는 시중에 유동성이 풍부하다는 의미인 만큼 코로나19 사태의 추이에 따라 매수심리가 살아나면 곧장 부동산 시장을 자극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 역시 금융위기와 달리 집값을 받쳐주는 요인으로 꼽힌다.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은 최근 수년간의 매매가 급등으로 인해 3월 현재 54.9%로 낮아졌지만, 2008년 8월의 39.1%에 비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전국 기준으로는 2008년 8월은 52.5% 였으면 2020년 3월은 69.2%로 16.7%포인트 더 높다. 수급 상황 역시 과거와는 다르다. 미분양의 경우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 8월 말 기준 15만 7,291가구였던 반면 현재는 2월 말 기준 3만 9,456가구로 당시의 4분의 1 수준이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 랩장은 “그동안 집값 상승에 대한 피로감이 크고, 경제상황에 대한 불안감도 높아져 투자 목적 거래는 줄고 있다”며 “다만 금리 수준이 낮고 정부도 강력한 부양책을 펼치고 있어 투매 상황이 펼쳐지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현재 부동산 시장의 가장 큰 변수는 실업이다. 실물경제의 부진이 장기간 지속 된다며 실업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크고, 이 경우 가계 소득이 급감해 낮은 금리 상황도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성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최근 발행한 보고서에서 “수도권에서는 최근 2년 새 30대와 40대가 각종 자금을 동원해 집을 마련했는데, 이로 인해 30~40대의 소득 중 원리금 상환 비중이 전년 대비 각각 21%와 6.9%가 늘었다”며 “이 세대는 전체 소득 가운데 근로소득이 최대 80%에 달하는 만큼 만약 실업이 발생하면 원리금 상환이 어렵고 이는 결국 주택시장에 하방 요인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2월 실업급여 지급액은 7,891억 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11월 대비 31.8% 증가한 수치다.

김흥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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