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장 앞 도로에 래커·페인트 등으로 각종 문구를 썼다가 재물손괴죄 등으로 기소됐던 유성기업 노조원 25명에 대해 대법원이 파기환송 결정을 내렸다. 도로 바닥에 글귀를 적었다고 해서 사람과 자동차의 통행이 불가능한 건 아니기 때문에 재물손괴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판단이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이 모씨 등 유성기업 노조원 25명의 폭력행위등처벌에대한법률위반(특수재물손괴) 등에 대한 상고심 선고에서 사건을 대전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3일 밝혔다. 앞서 원심은 이씨 등 9명에 대해 벌금 300만원을, 김 모씨 등 16명에게는 벌금 200만원을 선고한 바 있다. 재판부는 “원심 판결은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재물손괴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으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원심 판결 중 유죄 부분을 파기하고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환송한다”고 말했다.
이씨 등 25명은 지난 2014년 10월 충남 아산시 유성기업 공장 앞 도로에 스프레이 래커와 페인트 등으로 ‘개XX’ 등 모욕적인 내용의 문구를 쓴 혐의로 기소됐다. 유성기업 노사는 지난 2011년부터 마찰을 겪고 있다. 노조원들은 사측의 부당노동행위를 규탄한다는 이유로 유 모 유성기업 대표와 이 모 부사장 겸 아산공장장의 구속을 주장하며 이 같이 행동했다.
대법원 재판부는 이들의 행동이 도로를 물리적으로 못 쓰게 만들 수준은 아니었기 때문에 재물손괴죄를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제출된 증거만으론 도로에 기재한 문구의 글자들이 차량 통행과 안전에 실질적 지장을 초래했다는 점을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도로 통행 자체가 불가능해지지는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한 “도로가 산업현장에 위치해 있어 주된 용도와 기능은 사람, 자동차 등의 통행이며 미관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곳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앞서 1·2심은 이들 노조원을 모두 유죄로 판결했다. 1심 재판부는 “재물의 효용을 해한다고 함은 사실상으로나 감정상으로 그 재물을 본래의 사용목적에 공할 수 없게 하는 상태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며 유죄 판결을 내렸다. 항소심 재판부는 “도로 낙서 행위만으로는 사건 도로를 통해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지 않은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면서도 “회사에 출입·방문하는 회사 임원과 근로자들 및 거래처 관계자들이 주요 통행로로 이용하는 도로인 점, 물리적인 통행 편의를 제공하는 용도는 물론이고 쾌적한 근로환경을 유지하고 회사에 대한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도록 미적인 효용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고 보인다”며 유죄로 봤다.
이와 함께 대법원은 이씨 등의 모욕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을 뿐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할 만한 모욕적 언사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이 같이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