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확산으로 항공과 자동차, 정유, 조선 등 기간산업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정부의 기간산업 대책 발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기간산업의 특성 상 한 번의 ‘실기’가 향후 회복 불능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속도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이분법으로 구분하면서 지지세력을 의식해 대기업 지원에 인색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또 공무원들이 일시적 유동성에 빠진 대기업을 지원했다가 나중에 문제가 발생해 책임을 추궁당할까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다는 분석도 설득력을 얻는다.
무분별한 지원은 자칫 대기업 경영진의 모럴 해저드로 연결될 우려가 있는 만큼 정부로서도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신속한 지원과 동시에 대기업에서도 고용·일자리 유지에 대한 의지를 보이는 등 자구노력의 강도를 높여야 한다고 주문한다.
1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코로나 19로 항공과 자동차, 정유, 조선 등 산업의 피해는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항공업은 그야말로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 3월 국내 전체 공항의 국제선 여객 수는 64만7,650명으로, 이는 지난해 3월 759만9,502명 대비 91.4%나 급감한 수준이다.
자동차 업계도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올해 1·4분기 자동차 글로벌 판매량은 주요 자동차 수출국인 미국, EU의 경기 축소로 지난해 1·4분기보다 9.2%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자동차산업연합회는 최근 코로나 19가 오는 7월까지 지속할 경우 자동차 업계가 28조원의 유동성 부족 사태를 겪을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했다. 정유업계는 국내 정유 4사는 올해 1·4분기 2조5,000억원의 영업적자를 낼 것으로 분석했으며, 조선업계도 1·4분기 선박 발주량이 전년 동기 대비 71% 줄어드는 등 ‘수주절벽’을 우려하고 있다. 현재 각 업계는 무급 휴직과 급여 반납 등 자구노력에 착수한 상태다. 각 업계는 이른바 자구노력 차원에서 조달한 회사채 등 재원이 불과 한 두 달 안에 소진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일례로 항공업계에서는 ‘6월 위기설’이 공공연하게 제기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지난달 24일 문재인 대통령이 제2차 비상경제회의를 통해 “중소·중견기업 외에 대기업도 포함해 일시적인 자금 부족으로 쓰러지는 것을 막을 것”이라고 발언한 이후 금융위원회 등 관계부처를 중심으로 후속 대책 마련에 부심하는 분위기다. 실제 정부는 지난달 말 두산중공업에 대한 1조원 규모의 긴급 유동성 지원도 결정한 바 있다. 대책이 적기에 마련되지 않을 경우 한진해운처럼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등 더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도 읽힌다.
그러나 각 업계 역시 재무구조 개선 같은 자체 개선안을 마련하는 일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크다. 정부의 고민도 이런 연장선에서 이뤄지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기업 자체적인 뼈를 깎는 자구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칫 코로나19를 등에 엎은 무조건적 지원이 대주주와 경영진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간산업 지원은 전·후방 산업의 연쇄 도산과 고용 붕괴를 막는다는 전제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대기업에서도 고용과 일자리 유지에 대한 의지를 나타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세종=조양준·한재영기자 mryesandn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