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게 친구들과 즐겁게 시간을 보내며 일상생활을 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끼고 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이 힘든 시기를 이겨냈으면 좋겠습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역병 앞에 무너진 일상과 지친 이들을 위로할 선율로 돌아왔다. 연주를 위해 세계를 누비는, 자신의 삶과 닮은 새 앨범 ‘방랑자(The Wanderer)’와 함께다. 조성진은 다음달 8일 새 앨범 발매를 앞두고 13일 e메일로 진행된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5년간 이렇게 오래 쉬는 것은 처음”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새로 내놓을 앨범에는 우울하지만 화려한 기교가 돋보이는 슈베르트 ‘방랑자 환상곡’부터 기교와 힘이 동시에 필요한 리스트 ‘피아노 소나타’, 베르크 ‘피아노 소나타’ 등 낭만주의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을 수록했다. ‘방랑’은 19세기 낭만주의의 키워드다. 하지만 굳이 19세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방랑이라는 단어는 조성진 자신의 삶과 맞닿아 있다. 그는 “지난 2012년 파리로 유학을 가고 몇 년은 방학이나 연주 때문에 오가느라 어디가 집인지 모르겠더라”며 “항상 돌아다니는 직업이다 보니 ‘내가 있는 곳이 집’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고 말했다.
그가 직접 선택한 앨범 레퍼토리는 하나같이 까다로운 곡들이다. ‘방랑자 환상곡’은 슈베르트 자신도 ‘너무 어려워 칠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조성진은 “내가 연주한 슈베르트 곡 중에서 기술적으로 가장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라며 “테크닉이 어렵지만 듣는 이로 하여금 곡이 어렵게 느껴지지 않도록 감추는 게 제일 어려운 것 같다”고 설명했다. 리스트 소나타 역시 만만치 않은 도전이었다. 리스트의 작품은 ‘피아니스트를 벼랑 끝으로 내몬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고도의 기교를 요구한다. 조성진 역시 “워낙 긴 곡인데다 스케일이 커 가장 어려웠던 것 같다”고 털어놓았지만 리스트를 통해 자신의 변화를 확인하기도 했다. 그는 “리스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치기 시작해 처음 무대에 오른 2011년부터 3년에 한 번씩은 무대에서 연주한다”며 “매번 나의 해석과 음악적 관점, 시각이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전했다.
조성진은 지난달 28일에는 독일 가곡의 지존으로 통하는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와 슈베르트 가곡을 연주하는 온라인 공연으로 관객들과 만나기도 했다. 세계 피아노의 날을 맞아 세계 정상급 피아니스트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지친 전 세계인을 위로하기 위해 마련한 특별한 기획이었다. 앨범을 녹음할 때도 관객을 불러 연주해야 하는 그에게 ‘관객 없는 온라인 연주’는 처음이었다. 조성진은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나중에는 정말 콘서트를 하는 것 같은 에너지를 느꼈다”고 소감을 말했다.
2015년 ‘쇼팽국제콩쿠르’ 우승 이후 전 세계를 누비며 바쁜 나날을 보낸 그에게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멈춰버린 이 상황은 어색하기만 하다. 건반으로 인간의 희로애락을 만지고 표현해온 이 연주자는 그러나 고난 뒤에 찾아올 희망을 이야기한다. “어렵고 힘든 시기지만 우리는 곧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7월 예정된 한국 공연도 성사되기를 바랍니다.”